[문화산책] 백색 소음

  •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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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3  |  수정 2023-12-13 08:55  |  발행일 2023-12-13 제21면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꿈을 꾸다 잠결에 눈을 떴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무서운 생각이 든다.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마음을 달래 보는데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는다. TV를 켜고 눈을 감고 한참을 있다 보니, 덜 무섭고 편안하다. 눈꺼풀이 다시 감긴다. 적당한 데시벨의 소음은 신경을 안정시켜 주는 수면제 역할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음은 피곤하고 귀에 거슬리고 불쾌감을 주는, 듣기 싫은 소리이다. 잔소리도 심하면 소음처럼 들린다. 한편, 음의 폭이 넓어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소음이 있다. TV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잡음이 대표적인데 파도 소리와 숲의 소리에 묻힌 소음은 인간의 뇌파를 천천히 동화시켜 듣는 것만으로도 차분히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한다. 좋은 의도에서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하얀 거짓말처럼, 잔잔하고 편안한 배경을 만드는 소음이다.

이러한 좋은 소음이 백색소음(White Noise)인데, 주파수의 대역이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평탄한 잡음이다. 하얀색의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모든 스펙트럼의 색을 볼 수 있듯, 넓은 음역의 진동을 함께 담아서 백색소음이라 부른다. 이것은 다양한 상황을 포괄하는 배경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공간에서의 백색소음은 그 공간의 분위기를 가득하게 메운다.

배경으로서의 공간, 삶의 배경으로서의 도시공간은 백색소음같이 느껴진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흘러가는 빗소리,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자연의 소리는 우리 일상의 배경, 도시의 배경이 된다. 도시공간 속, 대단한 특색 없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평범한 건축물처럼. 저마다의 개성이 없는 바도 아닌데,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익숙한 도시의 건축물은 드러나고픈 세상 풍경 속에서의 여백이다.

좋게 될 품성을 가진 사람에게 우리는 늘품성이 있다고 한다. 늘품은 옷을 만들 때 실제 치수보다 더 주는 여유분으로, 세상을 여유롭게 포용하면 앞으로 더 좋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 듯하다. 백색소음이 음의 폭이 넓어 모든 파장을 포용하는 것과 같이 주변을 넓게 품는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가 되면 최고이다. 나는 늘품성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하는데 여태껏 철자가 '넓품성'인 줄 알았다. 늘품성을 가진 사람은 주변과도 잘 어울리고 긍정적인 인간사의 배경이 된다.

존재감 없는 평범함이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더 좋게 만든다. 자주 대면하고 싶은 순간이다. 백색으로 물러나 있는 시간이 어우러지는 여유가 그럴듯하다. 백색소음, 잔잔하게 흐르는 일상의 소음을 행복으로 연결해 보면 좋겠다. 제각각의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은은하게 음악을 튼다.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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