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수능에 대한 '斷想'(단상)

  • 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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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3  |  수정 2023-12-13 06:56  |  발행일 2023-12-13 제30면
수능 날 비행 금지하는 나라
출근 시간 늦추고 수험생 퀵
교육열 전세계 통틀어 으뜸
입시비리는 3대 국민 역린
정권몰락도 가져올 수 있어

[동대구로에서] 수능에 대한 斷想(단상)
진 식 사회부장

수능 날 '비행 금지하는 나라' '출근 시간 늦추는 나라' '수험생 오토바이 퀵서비스로 배달하는 나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대한민국에서 수능은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 치러진다. 올핸 11월16일이었다.

이번 수능 날에도 공무원을 비롯해 기업체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춰 오전 10시로 조정했다. 수험생들이 고사장에 원활하게 입실할 수 있도록 출근길 교통 체증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2교시 영어 듣기 시험 시간대에는 국내 모든 공항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됐다. 혹여나 항공기 소음으로 수험생들이 영어 듣기 문제를 제대로 듣지 못할까 봐서다. 수능 이후 실시되는 각 대학들의 논술·면접고사 땐 서울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오토바이 뒷좌석에 탑승해 고사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을 볼 수 있다. 오전에 이 대학에서 시험을 보고 오후엔 저 대학에서 고사를 치러야 하는데,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자칫 심각한 교통체증이라도 만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은 외신들도 흥미롭게 보면서 보도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은 인재(人材)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존자원이 척박한 나라이다 보니 믿을 건 사람밖에 없었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 공부시키는데 만큼은 아끼지 않는 게 우리네 어머니·아버지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지금도 학원가가 불황이면 정말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제일 나중에 줄이는 게 학원비이기 때문이다.

'교육열'은 전 세계를 통틀어 대한민국이 으뜸이다. 수능 날엔 온 나라가 몰입한다. 수능은 가장 대표적인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도 통한다. 그런 만큼 극도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게 요구된다. 오죽하면 '국민 3대 역린(逆鱗)' 중 하나에 입시가 포함됐을까. '입시 비리'를 비롯해 '병역 비리' '친일'이 국민 3대 역린으로 통한다. 요즘은 '학폭'이 4대 역린의 범주에 들었다.

국민 역린을 건드리면 정권도 무사하지 못한다. 오래전엔 당선이 유력하던 대선 후보가 '병풍'(병역 비리)에 휘말려 낙선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나중에 그 병풍이 허구였지만.

'최서원(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건도 돌이켜보면 '미르재단'보단 딸의 입시 비리로 인해 대통령 탄핵사태까지 맞았다. 그 딸은 서울의 유명 사립고 재학 시절 출결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 대기업으로부터 거저 받은 명마를 타고 훈련해 국제대회에서 입상했다. 그 경력 등으로 서울 유명 사립 여대에 입학한 사실에 온 국민이 격분한 것이다. 남들은 그 사립 여대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죽어라 공부하며 온 가족이 매달린다. 그래도 입학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권력을 이용해 떡하니 붙었으니 국민이 가만있겠나. 당시 광화문 '100만 촛불'의 서막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조국 사태'도 기폭제는 입시 비리다. 의대는 대한민국 모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로망이다. 그런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은 외고·대학교·의학전문대학원을 모두 필기시험 없이 합격했다. 이 과정에서 위조된 표창장과 추천서, 제1저자로 등재된 의학 논문 등 '부모 찬스'가 가동됐다. 결국 20년 집권한다던 민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진 식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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