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보이지 않는 것

  •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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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0  |  수정 2023-12-20 08:04  |  발행일 2023-12-20 제19면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몇 해 전 고려에서 조선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새 왕조를 설계한 정도전의 이야기를 다룬 TV 드라마가 최고의 시청률을 차지하며 방영되었다. 나도 재밌게 본방을 사수하며 시청했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정도전과 정몽주의 사상에 매료되었고 특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의 정체성을 죽음으로 지켜낸 정몽주가 맘에 들었다. 그래서 용인에 있는 그의 묘를 찾아 몰래 막걸리 한 잔을 뿌리고 왔다. 같지만 다른, 분명한 소신에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독일 베를린에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유대인박물관은 전 세계인이 알아야 할 유대인의 비극,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건축물의 형태와 공간을 다루었다. 유대인박물관 옆으로 수직 기둥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연결된다. 이 기둥 숲의 수많은 사이 공간을 경험하며 걸어 나오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닥이 기울어져 있어 똑바로 서 있는 줄 알았던 기둥이 모두 기울어진 기둥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땅이 기울어졌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의 세계관과 정신적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 주는 공간이다. 기울어진 기둥이 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과의 교감을 위해 또는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해 열심히 SNS에 접속한다. 글로, 사진으로, 쇼트폼으로 자신을 드러내어 타인의 거울에 나를 비추고 '좋아요'의 숫자로 내 존재의 가치를 측량한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보여주는 나도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이런 이기적 관계망 속에서 온전한 교감과 소통이 과연 가능할까?

고려말 성리학자인 포은 정몽주는 목은, 야은과 더불어 절의를 지킨 고려삼은으로 존숭받고 있다. 기울어 가는 고려의 국세를 되살리고자 이성계와도 손잡았던 현실개혁 정치가였지만 끝내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된다. 정몽주와 이성계의 교감은 어디까지였을까. 서로가 보고 싶은 것만 본 것임이 드러난 순간, 파국은 한순간이었고 결말은 비극적이었다.

세상에는 보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이 있는 듯하다. 보고 싶은 것에 치중하지는 않는지.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소중할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상을 지속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무엇'이다. 한해 마지막 즈음에 마음의 눈으로 들여다보자. 내가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무엇이 보이는지.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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