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눈으로 먹는다

  •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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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7  |  수정 2023-12-27 08:07  |  발행일 2023-12-27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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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메리 크리스마스! 빨강과 초록의 보색이 어색하지 않고 가장 잘 어울리는 시기이다. 머무르는 공간 한쪽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고, 방문하는 레스토랑에서 화려한 장식과 그 기분을 즐기고 싶다. 이제 곧 사라지게 될, 우리의 눈을 행복하게 했던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쉽다.

천장에 걸어 놓은 굴비를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밥반찬을 대신했다는 '자린고비' 설화는 근검절약 정신 또는 구두쇠의 인색함을 과장되게 비유한 것이지만, 그 속에서 한편으로 우리 조상이 가진 음식의 시각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눈으로 먹는 상상을 한 것이다.

점심시간이 끝날 즈음, 복도에서 지나친 학생이 "식사하셨어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친근감을 전달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나누는 "우리 언제 한번 밥 먹자"도 반가움의 익숙한 표현이다. 함께 먹는 것은 일상에서 관계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데, 레스토랑 역시 먹으면서 관계를 회복하는 분위기 연출, 휴식이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요즘은 예쁜 음식을 눈으로 먼저 즐기고 나중에 먹는다. 맛보다 비주얼이 더 기억에 남는다. SNS세대의 맛집 탐방은 본격적인 미각이 동원되기 전, 카메라의 맛보기가 우선되는데 후각이나 미각에 앞선 시각적 풍요로움으로 이미 포만감이 생기기도 한다. 음식은 보여주고 자랑하는 것이 되었다. 눈으로 먹는 맛이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로 메뉴판이 따로 없이 그날의 음식을 주방장이 알아서 만들어 내놓는 것인데, 오마카세 주방장의 음식솜씨에 대한 평가는 보이는 품새로 시작된다. 넘쳐나는 시각 미디어 매체 속에서 손이 빚어내는 맛깔스러운 비주얼을 맛본다. 맛난 솜씨도 비주얼이 더해져야 한다. 보기만 해도 좋다.

우리가 사는 도시와 건축도 그렇다. 건축가는 공간을 얘기하지만 보통의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는 것은 시각적 형태이다. 즉, 도시와 건축 역시 눈으로 즐기게 된다. 시각은 짧은 시간에 주변 환경을 받아들이는데, 인간의 관계가 더 행복해지려면 세상을 시각적으로 맛있게 바꿔보는 것이 필요하다.

옛말에 밥맛이 없으면 입맛으로 먹으라 했는데 이제는 눈맛으로 먹는 세상이다. 후각, 미각, 시각 중 시각적 음미가 맨 처음을 차지한다. 미디어 세상에서 과거의 미각은 느끼기 힘들다.

만지지 못하고 눈으로 보는 것, 먹지 못하고 눈으로만 보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보기만 해도 행복한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묘한 매력이 있다.

김소희 〈영남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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