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천국으로 가는 계단

  •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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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03  |  수정 2024-01-03 07:58  |  발행일 2024-01-03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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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란 (소설가)

그래서 새로 쓰게 된 칼럼은 어떤 내용이냐고 옆에서 묻길래 'Stairway to Heaven'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답했다. 새해부터 죽음을 말할 거냐? 아니, 삶을 이야기할 거야. 그건 결국 같은 거지.

이 노래는 익히 알려진 대로 1971년에 레드 제플린이 발표한, 록 역사상 불후의 명곡이다. 무려 8분이 넘는 황홀감을 선사하는 곡. 지미 페이지의 현란한 기타 연주, 로버트 플랜트의 감미롭고 격정적인 목소리는 언급하기도 새삼스럽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There's a lady who's sure all that glitters is gold(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라 여기는 여인이 있어)' 'And she's buying the stairway to heaven(그녀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 하지)'

이 진술은 2024년이 된 지금도 발표 당시와 다를 바 없이 먹힌다. 그 이전이라도 다르지 않았을 거고. 문학 작품이 독자에게 도달하면 그것은 이미 작가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되고 마는 것처럼 노래도 마찬가지일 터. 연주자의 것이 아니라 감상자의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 지극히 자의적으로 이 노래를 감상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천국에 있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 있다고 말해보면 어떨까.

해가 바뀌었다. 누군가는 지나간 해의 회한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새해의 새로운 목표를 세워 두고 각오의 날을 세우고 있으리라. 어쩌면 그 두 가지를 놓고 애증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세밑의 밤, 여느 해처럼 티브이 앞에 앉아 보신각 종소리를 들었다. 거기 몰린 인파의 표정을 살피노라면 어김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후회와 다짐이 있다.

'Yes, there are two paths you can go by, but in the long run(그래, 갈 수 있는 길은 두 갈래, 그러나 멀리 본다면)' 'There's still time to change the road you're on(갈 길을 바꿀 시간은 아직 충분해)'

길 끝에 다다르기 전에는 여전히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있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뜨거운 김이 나는 떡국을 앞에 놓고 천천히 수저를 움직이다 보면 적어도 살아 있음의 느꺼움 정도는 맛볼 수 있지 않나. 식탁을 정돈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다시 한번 노래를 들어본다. 현실이라는 지옥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으로 막연한 천국을 꿈꾸기보다 단단한 발자국을 한 개씩 찍으며 지금 부는 바람의 냄새를 맡기로 한다. 곧 돋아날 새순 같은 것들을 기다리며. 소박하게, 자주 음악에 기대기도 하면서.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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