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사소하지 않은 일

  •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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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4 08:00  |  수정 2024-01-24 08:02  |  발행일 2024-01-24 제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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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란 <소설가>

여기 위태로운 길을 가는 한 여성이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라말라에 거주한다. 목적지는 텔아비브와 북서 네게브. 그곳에 박물관과 기록보관소가 있다. 차로 한두 시간 걸릴 그곳까지 가는 여정은 그러나 간단치 않다. 그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일의 진실에 도달하는 여정이다.

제한구역에 거주하는 그는 동료로부터 신용카드와 신분증을 빌리고 차를 몰아 출발한다. 어떤 일이란 그가 태어난 날로부터 정확하게 25년 전 한 소녀가 이스라엘 병사들로부터 집단 강간과 살해를 당한 후 사막에 매장된 사건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알나크바(대재앙)'라 부르며 애도하고 이스라엘에서는 독립전쟁이라 부르며 경축하는 그 전쟁 1년 후인 1949년의 일. 팔레스타인 갈릴리 태생 작가이자 문화연구자인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전승희 역, 강)의 내용이다.

소설의 1부에서는 소녀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가해자인 소대장은 규율과 청결을 엄격하게 지켜나가는 인물로 그를 중심으로 한 디테일한 진술들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그러나 희생자인 소녀를 휘발유로 소독하면서까지 위생에 집착하던 그는 단숨에 무자비한 가해자로 바뀌고 독자는 당황하게 된다. 그가 유지해 나가던 '사소한 일'들 후에 벌어지는 엄청난 폭력과 비극에 무방비로 당하는 것이다. 2부에서는 '나'의 위험한 여정을 시종일관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나'가 날이 바뀌어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병사의 총에 희생당하는 결말을 봐야 한다.

작가는 지난가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리베라투르상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도서전 측에서는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표명, 시상식을 연기했다. 작품은 독일의 평론가에 의해 반유대주의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이라고 일컬어지던 가자지구는 이제 더는 감옥에 그치지 않는다. 자유만 속박당한 곳이 아니라 '죽음'과 '아직 안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되었으니.

작가는 염소도 동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물며 인간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인가 반문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즉각적으로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후세대가 알게 된다. 그리고 같은 일은 다시 발생한다. 낯설지 않다. 유구하게 반복되는 역사가 차곡차곡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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