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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란 소설가 |
행선지가 정해지면 꼭 지도앱을 열고 동선과 소요시간을 확인한다. 시행착오를 방지하고 정확한 시각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지도앱이 나오기 전 누군가에게 길을 묻거나 설명할 때 동서남북 방위를 언급하며 어느 쪽으로 대략 몇 미터 정도라고 말하곤 했는데 별로 유용하지 않았다. 요즘도 상대를 봐가며 그런 식의 유희를 시도해보지만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듯하다. 잘난 척해봤자 지도앱을 보면서도 가끔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만다. 그럴 땐 시쳇말로 '멘붕'에 빠지게 되지만 그럴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표지로 삼을 만한 건물이나 상호를 짚어가며 방향을 다시 확인한 다음 겸손한 마음으로 움직여야 덜 헤매는 법이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이야 일찍 나서면 도중에 헤매더라도 큰 문제가 없고, 좀 돌아가도 도착만 하면 대부분 괜찮다. 게다가 지도앱을 사용하는 경험치가 쌓일수록 실수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얼마나 명쾌하고 든든한 일인가. 사는 일에도 이런 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선택의 기로에서 방향을 제시해주고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미리 알려주고 잘못 가면 되돌아오는 길을 짚어주는 앱 말이다. 사는 일이야말로 일찍 나설 수도 없고 한번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으니.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엉뚱한 것들에 현혹되어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들어선 적이 많았다. 눈치를 챘으면 바로 돌아서야 하는데 그때까지 간 거리가 아까워서 머뭇거리기 일쑤였고, 이리 가도 결국 목적지에 도달할 거라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갈 만큼 간 후에야 막다른 길임을 뼈저리게 받아들이기도 했고,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 다음 천신만고 끝에 기어오르기도 했다. 물론 손발톱은 부러지고 빠졌다.
우습게도 오랫동안 나 자신이 아니라 길을 탓했다. 왜 내가 원하는 곳으로 뻗어있지 않은 걸까. 왜 생각지도 못한 곳에 바리케이드가 있는 걸까. 왜?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이 신기루 같은 길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한참 늦은 후에야 인정하게 되었다.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은 이제 믿지 않는다. 늦은 것은 늦은 것이다. 에누리가 없다.
지도앱을 열고 행선지까지의 여러 경로를 점검한다. 시간이 좀 더 걸리지만 편안한 길, 최단시간에 갈 수 있지만 고된 길, 혹은 이도 저도 아니지만 익숙한 길. 선택은 내 몫이다. 하지만 가끔은 첨단문명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무작정 길을 나서기도 한다. 그런 길에는 꼭 연초록의 싱싱한 풀잎들이 깔려 있기도 했다.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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