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문화 중심지 칠곡, K-할매 콘텐츠로 주목받다

  • 마준영
  • |
  • 입력 2024-03-20 07:33  |  수정 2024-03-20 07:34  |  발행일 2024-03-20 제11면
할매래퍼들 외신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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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할매래퍼그룹 '수니와 칠공주' 멤버들이 김재욱 군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칠곡의 할매래퍼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랩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통신사 로이터(Reuters)와 CCTV 등 외신 취재가 잇따르며 칠곡할매래퍼가 'K-할매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칠곡군 지천면 신4리를 직접 찾아 촬영한 평균 연령 85세의 8인조 할매 래퍼 '수니와 칠공주'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로이터는 칠곡할매래퍼에 대해 "이들의 성공은 한국이 이르면 내년에 인구의 5분의 1이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CCTV 등 취재 잇따라
초고령사회 앞둔 韓 사례 주목

어르신 래퍼그룹 활발한 활동
문해교실 시쓰는할매 글꼴 배포
랩 활용 치매예방 교육도 실시

郡, 공연·전시거점 문화관 추진
전국 할매래퍼 배틀대회 계획
역발상으로 고령화 위기 맞서


◆칠곡할매래퍼와 시 쓰는 할머니들

농촌의 고령화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경북의 일부 시·군은 이미 30~40%를 넘어섰다. 고령사회란 전대미문의 인구 개편 속에 노령층의 삶의 질은 국가적 화두로 떠올랐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고령화로 아우성이지만 칠곡군은 역발상으로 위기에서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칠곡군은 호국 도시로 유명했지만 최근에는 할매래퍼와 할매글꼴 등 전국적으로 할매 문화의 1번지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칠곡군은 고령화시대를 맞아 다양한 실버 문화 콘텐츠 개발에 앞장서 왔다. 수니와 칠공주, 보람할매연극단, 우리는 청춘이다, 어깨동무 등 4개의 할매래퍼 그룹이 활동하고 있다. 평균 연령 86세의 10인조 할매래퍼 그룹 텃밭 왕언니도 창단식을 준비하고 있다.

칠곡군 지천면 신4리 할머니들로 구성해 지난해 8월 창단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는 그룹 리더 박점순(85) 할머니 이름 가운데 마지막 글자 '순'을 변형한 '수니'와 일곱 명의 멤버를 의미한다. 수니와 칠공주는 아흔이 넘은 최고령 정두이(92) 할머니부터 여든을 바라보는 최연소 장옥금(75) 할머니 등 8명으로 구성됐다. 평균 연령 85세. 세계 최고령 래퍼그룹이다. 수니와 칠공주는 초등학교와 지역 축제 공연을 목표로 맹연습을 펼치고 있다. 도전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칠곡할매들의 경이롭고 끝없는 도전이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의 글꼴이 윤석열 대통령의 연하장에 사용돼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올해 첫 새해를 맞아 공무원들에게 보낸 연하장에는 공문서에서 익숙한 여타 서체 대신 칠곡할매글꼴 중 하나인 '권안자체'가 쓰였다.

칠곡할매들의 도전은 끝이 없다. 이번에는 래퍼로 변신했다. 모자를 비껴 쓰고, 엇박자의 몸짓으로 가사를 읊조린다.

'시 쓰는 할머니들'로 유명한 칠곡할매들의 도전의 시작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깨쳐 2015년 첫 시집 '시가 뭐고'를 낸 이후 칠곡할매들의 도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약목면 복성2리 할머니들은 첫 시집을 시작으로 잇따라 두 권의 시집을 더 내 화제가 됐다.

2021년에는 칠곡할매들의 삐뚤빼뚤 정겨운 글씨체가 '칠곡할매글꼴'로 만들어져 국립박물관 유물로 인정받았다. 당시 칠곡할매들은 훈민정음에 비유한 '용민정음'을 선포했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게 글꼴을 배포한다는 뜻이었다. 올해 5월에는 6·25전쟁을 겪은 칠곡 할머니들의 반전 메시지를 칠곡할매글꼴에 담아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랩 활용 치매 예방 프로그램 등장

이 같은 반향을 토대로 칠곡에서는 전국 최초로 랩을 활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주인공은 왜관읍 섬김주간힐링보호센터를 이용하는 어르신들로 지난 1일 열린 발표회를 통해 두 달간 연습한 랩 실력을 뽐냈다.

래퍼로 변신한 송석준(95) 할아버지가 우렁찬 목소리로 랩을 불렀다. 옆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비트에 몸을 맡기고 춤을 췄다. 송 할아버지는 지난해 11월 결성한 혼성 래퍼 그룹 '우리는 청춘이다'의 리더다. 우리는 청춘이다는 할머니 10명과 할아버지 3명으로 구성된 13인조 그룹으로,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88세다.

칠곡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랩을 배운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부터 정규 교육 과정에 랩을 채택하게 됐다. 센터를 이용 중인 모든 어르신은 일주일에 두 차례 랩을 배울 수 있다"고 밝혔다. 이곳 어르신들이 랩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10월 센터를 방문해 랩 공연을 선보인 8인조 그룹 '수니와 칠공주' 덕분이다.

이들의 공연을 본 어르신들이 "우리도 배우고 싶다"고 건의했다. 센터는 반복되는 가사를 암기하고 간단한 손동작으로 춤을 추는 랩이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 관련 전문의를 통해 조언을 구했다. 젊은 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랩이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는 답변을 받자 래퍼 그룹을 만들었다.

이호원 경북대 교수(신경과)는 "반복되는 노래 가사를 외우고 가볍게 춤을 추면서 말을 하듯 노래하는 것은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랩을 배우면서 젊은 세대와 소통해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노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칠곡군은 칠곡할매들의 상설 공연과 전시, 문화관광의 거점 역할을 할 '할매 문화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왜관읍 왜관소공원 일원에 지상 3층, 연면적 2천600여㎡ 규모로 지어진다. 전시실·공연장·교육 및 휴게공간 등이 갖춰질 예정이다. 이와 함께 칠곡군은 전국 할매래퍼 배틀 대회를 개최해 실버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마준영기자 mj340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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