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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
최근, KBS 인기프로그램이었던 개그콘서트의 '블랑카 이야기'를 현실에서 접하고 있다. 방송 당시는 외국인 근로자가 국내에 한창 들어왔을 때였고, 그와 동시에 기업, 동료 등의 부당한 처우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시기이기도 했다. 시대를 반영하듯 개그콘서트에서 외국인 노동자인 블랑카를 통해 악덕 사장을 풍자하는 내용이 대중적 인기몰이를 했었다.
이종사촌 언니가 사는 동네에는 몽골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편이다. 생활용품 가게를 운영하는 언니에게 외국인 고객이 많은 것은 언니의 친절은 물론 타고난 품성도 한몫 차지한 듯했다. 그들 중 갈마(가명)와 유민(가명)이가 유독 언니를 잘 따랐다. 20·30대인 그녀들은 화장품 이야기, 가족 이야기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곤 했다.
인정이 많은 언니는 그들에게 가끔 식사를 대접하거나 깨끗하게 입은 옷을 물려주기도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날에는 퇴근하고 들어서는 그녀들을 위해 좋아하는 김치볶음밥과 삼겹살로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추위와 고된 일, 허기까지 겹친 그들은 허겁지겁 폭풍 흡입하는 것이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언니를 보며, 나는 후식을 준비했다.
사과를 먹던 그녀들은 평소처럼 이야기를 주도했고, 시간이 무르익자 그녀들은 직장 이야기까지 쏟아냈다. 이야기는 조금씩 충격을 더해 갔고, 급기야 사장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이르기도 전에 언니와 나는 포크에 분노의 힘을 실어 사과를 '팍!' 찔렀다.
그들은 연신 "사장님 나빠요!"를 연발하였고, 객지 생활의 서러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하 5℃가 넘는 추위에도 난방기를 틀어주지 않아 종일 떨면서 일한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당장 그만두라고 강권했지만, 묘책을 주지는 못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한가득 채워준 것이다. 그녀들이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옷이 탈 것 같은데도 난로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조심하라고 당부해도 '너무 춥다'는 말만 연신하는 그들을 향해 "몽골은 여기보다 더 추운데 이 정도 추위에 그러냐?"는 언니의 핀잔도 그녀들은 애교로 넘기며 웃었다.
태생적 환경 차이에서 받는 차별을 씩씩하게 견디는 그녀들을 언니와 나는 오래전부터 가족처럼 보살피고 있다. 얼마 전, 전신거울이 필요하다는 말에 언니는 집에 있는 거울을 선뜻 실어다 주며, 세안 제품과 기초화장품도 챙겨주었다. 무척이나 흥분 섞인 어조로 "감사합니다"를 연거푸 말하는 그들이 나는 참 좋다. 우리는 왜 그녀들을 친정처럼 조금만 더 포근하게 품어 줄 수는 없는 걸까.
3월 중순이다. 봄이 왔는데도 '사장님 나빠요'라는 말은 여전히 이명처럼 꽂혀 내 기분을 흔들어댄다. 봄날이 그러하듯 '진심' 따뜻한 가슴으로 그녀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사장님 나빠요"가 아닌 "사장님 좋아요"라는 말도 함께 기다리는 중이다.
이향숙<(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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