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안녕, 시바견

  • 이향숙 (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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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0 08:08  |  수정 2024-03-20 08:13  |  발행일 2024-03-20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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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숙<(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저녁 약속에서 마신 커피 탓일까. 쉬이 잠들지 못하던 중에 임시보호소의 강아지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보호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남은 두 마리의 강아지 그리고 그들을 품어줄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강아지는 쌍둥이처럼 꼭 닮아 보였다. 보호자를 잃은 강아지가 다른 환경에 적응하려면 스트레스가 크겠다는 생각에 미치자 문득, 작년 여름 집 근처 산에서 만났던 시바견이 떠올랐다.

목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주인에게 버티던 녀석은 갈증을 달래고자 물을 들이켜 대는 나를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가던 걸음을 왜 멈추었는지 알 리가 없던 나는 잔뜩 겁을 먹은 채 주인에게 물었다. "소나기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나오느라 물을 못 챙겼더니 물을 마시는 등산객만 보면 멈추네요." 그제야 나는 가벼운 숨소리와 함께 어깨 근육을 풀었다. 얼른 배낭에서 커피잔으로 사용했던 종이컵을 꺼내 헹구고 남은 생수를 채워 내밀었다. 혀를 날름거리며 찰랑거리던 물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비우고, 꼬리를 흔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좀 전의 위압감은 사라지고 반려견 주인도 팽팽하게 당겼던 목줄을 조금 느슨하게 놓으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갈증은 떠나보냈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는 시바견과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었다. 내가 눈높이 자세로 낮추자 시바견은 이때다 싶은지 얼른 내 볼을 핥았다. 시바견의 매너라고 해야 할지, 암튼 나는 감동을 제대로 받았고, 찰나의 사진도 얻어냈다. '다음에 또 만나려나?' 기대 반, 미련 반을 저울질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 인간의 본성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 등에서 파악된다. 이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 즉 자신의 반려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마실 물을 챙겨오지 못해 미안해하는 주인의 마음에 반려견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했다. 그날, 시바견과의 조우로 산을 오를 때면 이따금 그 시바견이 떠올라 '피식' 웃게 된다.

이틀 후, 임시보호소의 강아지는 제주도의 어느 펜션에 입양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첫눈에 강한 이끌림으로 입양을 결정했다는 새 주인의 훈훈한 책임감에 감동이 밀려왔다. 만연한 봄꽃을 흩뿌리는 화동이 되어 그들의 새 출발을 응원해본다. 또 오지랖일까.이향숙<(사)산학연구원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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