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서재]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공쿠르상 2회 수상 작가, 파란만장한 '자기 앞의 생' 살다가다

  •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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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29 07:57  |  수정 2024-03-31 00:55  |  발행일 2024-03-29 제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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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제공〉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은 '공쿠르 상'이다. 이 상은 한 작가에게 두 번 주지 않는 상인데,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 있다.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도 알려져 있는 로맹 가리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는 작가뿐만 아니라 외교관, 영화 감독도 지냈다.

로맹 가리는 1914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프랑스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로렌 비행 중대 대위로 참전했다. 참전 중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받아 명성을 떨쳤다. 1956년에는 첫 작품을 낸 지 11년 만에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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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영화 감독으로도 일했다. 전쟁 중 공적을 인정받아 종전 직후 불가리아와 스위스에서 프랑스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1956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총영사가 되어 할리우드를 가까이하게 된다. 1958년 '하늘의 뿌리'를 영화화한 작품 '천국의 뿌리' 각색에 참여하면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그가 공쿠르 상을 2회 수상하게 되는 건 60세가 되던 해인 1974년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이 이름으로 '그로칼랭'을 출간해 신인 작가로 큰 관심을 받고, 다음 해인 1975년 같은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작은 사진〉을 발표해 공쿠르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당시 그의 명성은 엄청났다고 한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은 그의 권총 자살로 인해 밝혀진다. 1979년 그의 전 아내인 진 세버그가 약물 투여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도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1년 후인 1980년 12월2일 66세의 나이에 권총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내용의 유서가 밝혀져 전 세계 문학계에 파문이 일었다. 조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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