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현재=선물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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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30 06:58  |  수정 2024-04-30 06:59  |  발행일 2024-04-30 제23면

영어에는 다의어가 꽤 많다. 한 단어에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의미가 담겨 있어 영어 공부할 때 헷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present'도 그중 하나다. 'pre(앞에)'와 'sent(존재하는)'의 합성어로 '현재'와 '선물'을 뜻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현재, 다시 말해 삶 자체가 선물이란 의미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이 단어에는 뛰어난 통찰력이 담겨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스스로 노력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우리의 생명은 공짜로 받은 선물과 같다. 삶이 축복이라고 하는 이유다.

현재의 다른 이름은 '지금'이다. 삶은 언제나 지금이다. 고금의 성현들은 시간은 환상이라고 가르친다. 과거와 미래는 생각 안에서만 있으며, 실제 존재하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찰나 간에 생멸하는 '영원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 미래의 상상도 지금의 순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을 벗어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을 자각하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세팅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어진 현재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면서 소중함을 잊고 산다.

현재를 진정한 선물로 느끼는 사람은 드물다. 과거와 미래의 중간다리 정도로 여긴다. 그래서 오롯이 현재에 머물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외부 대상을 좇거나 생각, 감정에 끌려다니느라 바쁘다. 사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게 현대인의 가장 흔한 병이다. 심해지면 중독과 강박증이 된다. 지금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지 못하는 게 불행이다. 현재로부터의 도피를 멈춰야 한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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