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쩌다 특수교사 : 영수의 비질

  • 박일호<작가·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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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7 07:57  |  수정 2024-05-13 17:26  |  발행일 2024-05-07 제17면

박일호_작가
박일호<작가·특수교사>

전공과 사고뭉치 영수는 요즘 슬럼프입니다. 마음이 힘들고 인생이 고되답니다. 학교에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가는 영수의 뒤통수에 한마디 툭 던져봅니다.

"영수야 어디 가노. 청소나 하러 가자."

웬일인지 영수가 따라나섭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둘러대고 몰래 담배나 태우러 갈 텐데 말이죠. 슬리퍼를 끌며 어슬렁어슬렁 따라옵니다.

"쓱쓱, 싹싹"

그렇게 오늘은 볕 좋은 나무 아래서 둘이 낙엽을 쓸었습니다.

바람이 좋아서 그런지 유난히 영수의 비질이 시원시원합니다. 우선 도로에 흩어진 낙엽들을 가 쪽으로 먼저 쓸어내고는 몇 걸음 간격으로 낙엽을 모아두었습니다. 그러고는 모은 낙엽을 쓰레받기에 담아 마대에 부어 넣었습니다. 배운 대로 정말 능숙하게 잘하더군요. 기회다 싶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주었습니다.

"이야~ 역시 졸업반 선배님은 다르네, 너무 잘한다. 멋지다 멋져."

저는 칭찬이 바래지 않도록 영수가 흘리고 간 낙엽들을 제 쓰레받기에 얼른 쓱쓱 담습니다. 영수가 지나간 자리가 더 깨끗하도록 부족한 부분을 깨끗이 쓸어주었습니다.

"영수야, 네가 쓴 곳 한번 봐봐라. 너무 깨끗하제?"

영수는 뿌듯한 듯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립니다.

이 자리를 많은 친구들이 거쳐 갔습니다. 봄에는 흐드러진 벚꽃잎을 쓸고, 가을에는 알록달록 낙엽을 쓸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서툴렀던 비질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같은 곳을 쓸면서 점점 요령이 생기고 능숙해졌습니다. 그렇게 훈련된 친구들은 하나둘 취업을 나갔습니다.

졸업반 중에 유일하게 영수만 남았습니다. 뭐 때문에 그렇게 방황하는지, 이젠 이유를 찾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고를 칠 때마다 속도 상하고 밉기도 했습니다. 그럴 거면 알아서 살라고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비질이 다시금 영수를 보게 했습니다. 저렇게 잘할 수 있는 아이인데 내가 먼저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비질을 하면서 그간 내 마음에 쌓여있던 찌꺼기들도 함께 쓸어내었습니다.

깨끗하게 비워진 도로를 보며 영수의 마음도 깨끗이 비워지면 좋겠습니다. 아픔도 방황도 마대에 넣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또다시 낙엽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를 쓸고 또 쓸면 되니까요.
박일호<작가·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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