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도현이법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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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10 07:00  |  수정 2024-05-10 07:01  |  발행일 2024-05-10 제27면

2022년 12월 강원도 강릉에서 끔찍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60대 할머니가 몰던 차량이 지하통로에 추락해 할머니는 중상을 입었고, 동승했던 12세 손자 이도현군은 숨졌다. 이 사고는 차량 급발진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많았다. 할머니는 8년간이나 손자를 같은 차에 태워 등하교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그날 차가 갑자기 시속 100㎞ 넘게 급가속했고, 다른 차량을 추돌하고도 600m를 더 달렸다. "이게(브레이크) 왜 안돼"라는 할머니의 당황한 음성도 녹음돼 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 분석 결과는 판에 박힌 듯 운전자 과실로 몰고 갔다.

이도현군 유족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차량 급발진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도현군 아버지 이상훈씨가 나섰다. 국민청원을 통해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에 공감한 국민 여론이 들끓자 국회가 움직였다. 차량 결함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가 지도록 하는 이른바 '도현이법'이 발의됐다. 하지만 이 법은 아직까지 표류 중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씨가 또 나섰다. 최근에 그는 당시 사고 현장에서 급발진 입증을 위해 국내 처음으로 '재연시험'을 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지난 10년간 급발진 의심사고는 600건에 이르지만 제조사 책임이 인정된 사례는 전무하다. 제조사의 로비와 정치권의 무관심이 낳은 결과다. 여기에 더해 공정거래위원회도 기업 편에 서서 도현이법 입법을 사실상 반대한다. 소비자에게 너무나 불공정한 처사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급발진 피해자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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