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어쩌다 특수교사 : 내 꿈은 뮤지컬 배우

  • 박일호 작가·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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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21  |  수정 2024-05-21 08:15  |  발행일 2024-05-21 제17면

[문화산책] 어쩌다 특수교사 : 내 꿈은 뮤지컬 배우
박일호<작가·특수교사>

전공과 재인이는 끼가 아주 많습니다. 춤추는 걸 좋아하고, 노래를 즐겨 하며, 뮤지컬을 사랑하는 아이입니다. 무엇보다 부끄럼이 없어서 어디든지 재인이가 서 있는 곳이면 바로 무대가 됩니다. 또 말하는 걸 좋아해 쉴 새 없이 말하는 투 머치 토커랍니다.

그런 재인이가 친구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고난도의 '트월킹'이라는 춤을요. '트월킹'은 몸을 낮추고 엉덩이를 흔들며 추기에 보는 이들이 좀 민망할 수 있지만 재인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리듬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출 뿐이죠. 그런 끼 많은 재인이에게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음치'라는 건데요. 노래로 대사를 해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상 음치는 배우에게 아주 치명적이죠. 문제는 이것이 취업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구에 장애인들이 춤과 노래로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는데요. 먼저 춤을 잘 추어서 취업한 선배가 있어서 재인이도 그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죠. 그런데 음치라는 이유로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름 강의를 듣고 맹연습을 했는데도 말이에요. 본인도 너무 아쉬워하고, 취업을 돕는 우리 선생님들도 안타까웠습니다.

얼마 후 재인이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일자리 중 하나인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에 채용되었습니다. 인근 노인 요양 시설에 취업하게 되었죠. 이제 뮤지컬 배우의 꿈을 접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재인이의 끼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재인이는 요양 시설에서 청소와 프로그램 진행 보조, 간식 나눠드리기 등의 업무를 하는데요. 어르신들을 많이 마주치다 보니 재인이가 그분들의 말동무가 되어드렸대요. 쉴 새 없이 종알종알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심심해할 겨를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갈고닦은 뮤지컬을 어르신들 앞에서 펼치기도 하고요. 민망한 트월킹을 가끔 추기도 하지만요. 함께 일하시는 분들도 침이 마르게 칭찬을 퍼부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시설 분위기도 너무 좋아진다고 하셨어요.

그렇습니다. 그곳이 이제 재인이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관객이 있고 노래하고 춤출 수 있다면 어디든 무대가 아니겠습니까? 비록 화려한 조명과 의상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지금을 뮤지컬 배우처럼 사는 재인이가 너무 멋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무대에서 멋진 역할로 살아가고 있는 재인이의 1호 팬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사인 한 장 받아두어야겠습니다.박일호<작가·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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