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부모가 된다는 것은

  • 서정길 수필가
  • |
  • 입력 2024-06-20  |  수정 2024-06-20 07:45  |  발행일 2024-06-20 제16면

서정길_수필가
서정길<수필가>

아들의 들뜬 목소리가 온몸을 화하게 한다. 며느리가 임신했다는 소식이다. 보내온 태아 사진을 보니 코끝이 찡해 오면서 아들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아들은 몸이 허약해 병치레가 잦았고 여섯 살 무렵까지는 '열성 경련'을 자주 일으켜 식구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건강한 모습으로 또래들과 씩씩하게 뛰놀기만을 바랐다.

부부 동반 선진지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안 공기가 심상찮았다. 어머니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아들이 등교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머리에 황소 뿔이 솟았다. 철이 없어도 그렇지, 나흘이나 결석하다니. 종아리에 피멍이 들도록 매질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원 근처에는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숙제라도 하라 다그치면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을 잤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와는 담을 두껍게 쌓았다. 그래도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방학을 앞둔 어느 날, 아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서야 퀭한 눈으로 돌아왔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주머니를 다 비우고서야 돌아온 것이다. 또 회초리를 들었다. 자식에게 애정을 제대로 쏟지 못한 자괴감에 울음이 터져 나왔고 매를 든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자식 훈육을 매질로 해야 하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

고교진학을 앞둔 아들은 전자기기 조립에 매달릴 뿐 진로에 관심이 없었다. "이 자슥 누굴 닮았는지…. 돌대가리 같은 놈." 홧김에 내뱉은 한마디가 부부 사이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 몇 날 동안 천둥 번개가 쳤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은 실업 계열에 진학했다. 다행히 적성에 맞았는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외국인 회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어학 능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퇴사해 버렸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컴퓨터 자판만 두들겼다. 방에서 뒹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더 안달 났다. 말로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아 장문의 편지를 썼다.

'실패는 달리다 넘어졌을 때 달리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 못 하는 건 바보짓이다. 너는 성공해도 실패해도 내 자식이다. 다만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내 자식답지 않다.'

아들은 어학연수를 마친 그해 D 해양사로부터 합격을 통보받았다. 아내도 나도 목이 메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부모는 없다. 부모란 때로는 자식에게 절망하고 훈육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비로소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도 이런 과정을 겪는 가운데 온전한 부모가 되리라 믿는다. 서정길<수필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