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지킨 땅에서 난 농산물 바칩니다" 6·25때 전사 김희정 중위 기려

  • 마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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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21  |  수정 2024-06-21 07:35  |  발행일 2024-06-21 제8면
칠곡 가산 응추리 주민 추모식

유가족에 정성 담은 택배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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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가산면 응추리 마을 주민들과 김재욱 칠곡군수가 지난 20일 고(故) 김희정 중위 유가족에게 보낼 농산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칠곡군 제공〉

"당신이 잠든 이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바칩니다."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응추리 주민들이 6·25 전쟁 당시 마을을 지키다 전사하고 70여 년 만에 유해가 발굴된 국군 장병 유가족에게 지역 농산물을 보내 눈길을 끈다. 응추리 주민들은 20일 자신들이 직접 재배한 고사리, 참기름, 마늘, 쌀, 감자 등의 농산물을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고(故) 김희정 육군 중위의 유가족에게 보냈다.

마을 앞산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한 김 중위의 안타까운 희생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김 중위는 백선엽 장군이 지휘했던 육군 제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장교로 임관해 전투에 참여한 지 보름 만에 가산면 응추리 야산에서 전사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2022년 9월 김 중위의 유해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 유해는 지난달 유가족에게 전달됐고, 19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 같은 안타까운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종록 응추리 이장과 주민들은 논의 끝에 간소한 추모식을 열고 김 중위가 목숨과 바꾼 생명 같은 땅에서 자란 농산물을 대구에 살고 있는 유가족에게 보내기로 했다. 지난 20일 열린 추모식에는 마을 반장, 새마을지도자 등은 물론 일반 주민들도 정성껏 재배한 농산물을 한 아름 들고 참여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도 전달식에 참석해 주민들을 격려하며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손 팻말을 들고 고인의 희생과 헌신을 기렸다. 지역 한 어린이집 원생들도 추모식에 참석해 고사리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낭독해 눈길을 끌었다.

추모식은 마을 반장이 사회를 맡고 새마을지도자가 주민을 대표해 감사 편지를 낭독하는 등 주민 주도로 열렸다. 주민들은 행사가 열린 마을회관 앞에 고인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긴 두 개의 현수막을 내걸고 정성 들여 다섯 개의 택배 상자에 농산물과 편지를 넣고 포장했다.

이종록 이장은 "고인의 희생이 씨앗이 돼 농작물 또한 풍성하게 자란 것 같다"며 "아무리 바빠도 매년 6월만이라도 주민들과 함께 고인을 비롯한 모든 참전용사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다짐했다.

김재욱 군수는 "응추리 주민들이 뜻깊은 일을 했다"며 "칠곡군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수많은 호국영령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마준영기자 mj3407@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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