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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일호<작가·특수교사> |
10㎏짜리 감자 상자 수십 개가 지게차에 실려서 옵니다. 우리 눈앞에는 금세 성인 키만큼의 감자 산이 생겼습니다. 한 친구는 커다란 눈삽으로 감자를 기계에 퍼 넣습니다. 기계는 물 세척으로 흙을 씻어 낸 후 껍질을 한 꺼풀 벗겨냅니다.
자, 이제부터 우리 전공과 현장 실습생의 시간입니다. 한 손에는 감자를, 다른 한 손에는 업소용 감자 칼을 비장하게 움켜쥡니다.
"슥 슥 슥슥슥"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때론 일정하게, 때론 리듬감 있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덜 벗겨진 감자의 껍질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깎아냅니다.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일이 고급 기술은 아닙니다만 상처나 쏙 파인 부분을 꼼꼼하게 벗겨내야 해서 손이 많이 갑니다. 물기 때문에 미끄럽고 손이 시려 목장갑과 그 위에 얇은 작업용 고무장갑을 낍니다. 방수 앞치마와 장화는 필수이지요. 여기저기 껍질이 날아다니다 얼굴에 붙어서 깔깔 웃기도 합니다. 뽀얗게 벗겨진 감자는 깨끗한 물에 퐁당퐁당 연이어 다이빙을 합니다.
실습 때가 되면 저는 학생들과 되도록 같이 일하려고 합니다. 같은 복장으로, 같은 장비를 들고요. 저도 일을 해봐야 요령을 가르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일주일을 같이 보내고 나면 더 잘 적응합니다. 또한 친구들에게 일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자세와 태도도 가르칩니다. 힘들지만 묵묵히 견디는 법, 일하는 동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들, 고된 작업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말하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자, 잠깐 스트레칭하고 할까?" "힘들지? 잘하고 있어! 파이팅!" "와~ 너 정말 잘하네. 멋지다." "조금만 더하면 퇴근이야. 힘내자!"
별거 아닌 말들이지만 같이 땀 흘리며 고생하면서 던지는 말들에는 진심이 담깁니다. 그래서 최대한 함께 일하려고 합니다. 옆에서 일하는 직원분들도 일손이 하나 더 생기니 좋아하십니다. 기분이 좋아진 이모님들은 우리 친구들에게도 더 친절히 대해주시죠.
어떤 교사가 될 것인가 새로운 현장 실습지를 갈 때마다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말로만 가르치는 교사가 될 것인가,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는 교사가 될 것인가. 이번처럼 고생스러운 작업일 때면 더 고민이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마다 후자를 택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부디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일을 더 잘하게 되고, 회사에 더 빨리 적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장동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게 되고 점수를 잔뜩 따서 안정적인 고용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감자와의 사투를 끝내고 다시 돌아간 교무실에서 또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번엔 우엉과 당근을 가공하는 업체에서 현장 실습생을 뽑는다네요.
휴~ 가슴을 쓸어내려 봅니다. 매운 양파랑 마늘이 아닌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요. 박일호<작가·특수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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