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완 칼럼] 평행이론과 핵우산

  • 박규완
  • |
  • 입력 2024-07-04  |  수정 2024-07-04 06:58  |  발행일 2024-07-04 제22면
'부다페스트 각서' 휴지 조각

협상 주도한 클린턴의 후회

'워싱턴 선언'만 믿어야 하나

금기어 '핵무장' 봉인 해제

핵연료 재처리는 마지노선

[박규완 칼럼] 평행이론과 핵우산
논설위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탄식을 쏟아냈다. 클린턴은 1994년 1월 당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을 주도했다. 우크라이나 핵무기 전부를 러시아로 이관한다는 내용이 각서에 담겼다. 우크라이나는 그때까진 전략핵탄두 1천240기를 가진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다. 비록 옛 소련이 남긴 유산이긴 해도.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이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이관 동의를 추동했고 우크라이나를 설득한 장본인이 클린턴이다. 클린턴은 지난해 4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 포기 설득을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클린턴의 자책은 우크라이나가 핵을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침공하지 않았을 거라는 가정의 발로이리라. 결과적으로 미국·영국·러시아 등 강대국의 핵군축 복선(伏線)에 우크라이나만 희생양이 된 꼴이다.

우크라이나 학습효과는 자연스럽게 앵글을 한반도로 옮겨온다. 북한이 대한민국에 핵 공격을 감행했을 때 미국은 흔쾌히 핵우산을 펼쳐줄까. 평행이론은 시공(時空)을 넘나든다. 링컨과 케네디는 다른 시대, 같은 운명의 궤적을 그렸다. 평행이론이 작동한다면 미국이 발을 뺄 개연성이 다분하다. '워싱턴 선언'을 믿으라고? 그럼 '부다페스트 각서'는 왜 휴지조각이 됐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핵의 전쟁 억지력을 다시 소환한다. 핵무력을 잃은 우크라이나는 온 나라가 포연의 고통 속에 빠졌다. 핵을 포기한 자해적 후과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21년 만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하지만 2차 대전 종식 후엔 80년 가까이 3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군사학자들은 핵의 전쟁 억지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예외 없이 군사력의 기울기가 심해졌을 때 발발했다. 남북의 핵전력 비대칭 구도는 전쟁 억지의 결손요인이다. 평화를 위한 핵무장이라면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핵의 '절대 방패'는 핵뿐이니까.

세상은 참 역설적이다. 1991년 미국이 주한미군에 배치했던 전술핵무기를 철수하고,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다. 북한의 핵 야욕을 꺾겠다는 포석이었다. 하지만 북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1994년 미국과 핵 동결에 합의하고도 약속을 뒤집었다. 전술핵무기 철수는 남북 핵 불균형의 단초가 됐을 뿐이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 반열에 올랐다. 핵을 포기할 의사는 1도 없다. 향후 북미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 핵군축 협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한국의 핵무장이 역설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앞당길지 모른다. 남북의 대칭적 핵전력→남북 핵군축 협상→한반도 비핵화 시나리오는 차라리 곡진하다.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핵무장 목소리가 점증한다. 싱크탱크 카토연구소 더그 밴도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핵무장은 차악의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공공연히 "주한미군 철수"를 들먹이는 '트럼프 리스크'에도 핵무장은 유효하다. 미국이 두호하면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에 따른 유엔 제재도 견뎌낼 재간이 생긴다.

금기어 '핵무장'의 봉인이 풀렸다. 4명의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이 4색 의견을 개진했다. 핵무장이 여의찮으면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옵션이라도 챙겨야 한다. 이게 우리의 마지노선이다.
논설위원

기자 이미지

박규완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