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꽃 알레르기

  • 성욱현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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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7-30  |  수정 2024-07-30 08:04  |  발행일 2024-07-30 제18면

성욱현
성욱현<시인·동화작가>

고향에서 꽃을 보냈다. 유칼립투스와 스토크라 불리는 비단향꽃무였다. 책방에 놓으라며 밀양에서 꽃 농사를 짓는 어머니가 보낸 것들이다. 책방의 귀퉁이마다 화병을 놓고 꽃을 둔다. 유칼립투스는 잘 말려서 바람이 잘 드는 곳에 걸어두었다.

꽃을 키우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대부분의 꽃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다. 꽃가루가 날리는 환절기가 되면 재채기를 달고 산다. 내게 수십 종의 식물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날, 나는 세상의 기묘함에 대해 깨달았다.

해바라기가 우리 집 앞마당을 가득 메운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의 일을 돕기 위해 해바라기 줄기를 다듬었다. 해바라기 줄기에는 하얀 솜털이 자라 있다. 그 털은 가시처럼 빳빳해서 줄기를 다듬다 보면 살결에 박혔다. 고흐의 그림에서나 봤던 해바라기를 마주하고 다듬고 하나의 다발로 만드는 일에 몰입하며 상처도 가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날 밤 내 팔에는 붉은 두드러기가 우수수 올라왔고 열기와 가려움에 잠들지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부모의 일을 돕지 못하는 자식이 되었다. 마당에 수없이 놓인 빨간 고무대야 위로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흔들리는 집에서 자랐어도 꽃과 친해질 수 없었다. 팔이 가렵지만 긁을 수 없어 잠을 뒤척이던 그날 밤에 이 세상의 기묘함에 대해 생각했다. 이 낯선 세상에서 당연한 것은 없구나. 돌이켜보면 그 밤이 내게 문학이 싹트는 순간 중 하나였겠다.

살아가다 보면 종종 거부할 수밖에 없는 일과 마주친다. 그런 일의 대부분은 꽃을 키우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대부분의 꽃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아이의 일처럼 도저히 수긍할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긍하며 살아간다. 부모는 꽃을 키우고 자식은 책방을 운영하고 어머니는 종종 직접 키운 꽃을 아들에게 보낸다. 알레르기가 심하지 않은 꽃들은 남기고, 심한 꽃들은 선물한다. 내 삶에서 꽃은 영원히 거부되지만 동시에 함께하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의 존재 이유도 그와 같다. 그럼에도 살아가게 하는 이야기다. 책장을 살피며 고민에 빠진 사람들도 어쩌면 나와 같은 순간을 지나고 있진 않을까 생각한다. 문학이 제 역할을 잘 해내길 바라며 혹시나 도움을 청하면 추천할 책을 고민해 둔다.

비록 거부로 시작되었어도 끝내 함께하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향에서 올려보낼 꽃을 기다린다. 언제나 책방 한 귀퉁이에 꽃의 자리를 마련해 둔다. 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꽃을 보는 표정은 밝다. 꽃의 이름을 묻는 손님도 있다. 나는 자랑스럽게 고향에서 보내온 꽃이라 답한다.
성욱현<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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