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모퉁이

  • 성욱현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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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13  |  수정 2024-08-13 07:41  |  발행일 2024-08-13 제17면

성욱현<시인·동화작가>
성욱현<시인·동화작가>

우리 책방은 모퉁이에 있다. 4차선 도로 앞 세 갈래로 나뉘는 교차로 인근에 위치한 것이다. 왼쪽으로 가면 천안역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기 위해 인근을 지난다. 오른쪽으로 가면 보건소가 나온다. 조금 더 나아가면 시청이 있다. 여러 은행과 관공서가 위치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유턴을 하듯 오른쪽으로 깊이 꺾으면 오래된 구도심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아는 사람들만 찾곤 하는 시장이 열리고, 오랫동안 빈 상가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곧 재개발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도는 거리이다.

이곳에서 책방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는 모퉁이라는 위치였다. 구부러진 혹은 깎여져 나간 이곳의 입구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두 개의 쇼윈도는 왼쪽 방향, 정면, 오른쪽 방향을 내비치고 있고, 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걸어왔다. 어디서 출발을 했건, 어디로 가고 있건 모퉁이는 모든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을 환대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모퉁이라는 위치에 사로잡힌 나는 어느 정도 눈이 멀었다는 것을 시인한다. 툭 튀어나온 그 자리에, 아무도 찾지 않아 오랫동안 비어있던 어두운 자리에, 구도심의 중심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의 갈림길이 되었던 그 오래된 자리에 책방을 열고 싶었다. 자리란 게 본래 그런 것이다. 툭 떨어진 나무열매가 땅에 묻혀 다시 자라나듯, 강물을 따라 흐르던 물고기가 결국엔 제 영역을 삼을만한 바위틈에 닿듯 생겨난다. 자리의 과정에서만큼은 자연스러움과 우연함은 같은 단어다.

다행히 이 모퉁이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커피를 사 마시고, 책에 관심을 보일만 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보건소와 천안역이 근처에 있고, 은행이며 관공서가 즐비했고, 근처 시장에서는 삶의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그 사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힘든 모퉁이의 자리에 우리 책방이 서 있다.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시작은 언제나 모퉁이에서부터라고. 돌아서서 넘어가야 하는 그 순간 내 앞에 들이닥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돌아가거나 혹은 돌아서거나. 그 순간에 무언가가 시작된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우리가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의 자리 또한 모퉁이에 있다고. 모퉁이의 자리는 시작의 다른 이름이자, 끝의 다른 이름이라고. 문학이, 시와 동화가, 사람이 놓여 있을 자리로 이 모퉁이는 참으로 적당한 자리라고 말이다. 그렇게 후미지고 구석진 모퉁이라는 자리를 조금이나마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삶의 모퉁이에 서 있다 느낄 때 멈추는 대신 산뜻한 걸음을 이어갈 수 있기를.
성욱현<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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