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세대의 이름

  • 성욱현 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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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8-27  |  수정 2024-08-27 07:58  |  발행일 2024-08-27 제19면

성욱현
성욱현<시인·동화작가>

나는 텔레비전 키드였다. 텔레비전이 집집마다 놓여있던 세대, 텔레비전을 보며 자란 어린이란 뜻이다. 저녁이면 모든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름 모를 외국의 영화나 연예인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를 보았다. 나의 가족은 말이 없는 편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뚝뚝했다.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일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텔레비전 앞이 우리가 모이는 자리였다. 저녁이 되면 불을 끄고 텔레비전을 봤다. 각자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리거나 눕거나 제멋대로의 자세로.

텔레비전에서는 종종 폭탄이 터지기도 하고, 강아지가 죽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사람들의 괴롭힘을 받다가 괴상한 악당으로 자라나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끝내 승리하는, 성장하는, 사랑하는 이야기.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나면 "이제 잘 시간이야" 하는 목소리와 함께 텔레비전이 꺼졌다.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만 같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어둠 속에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빛났다. 어김없이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이야기를 보았다. 그때 나는 알았던 거다. 어떤 이야기든 결국엔 끝이 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 모든 이야기는 반짝이고 있는 거구나.

그렇게 평생 함께할 줄 알았던 텔레비전의 시대는 끝이 났다. 그 시절 어른들은 말했다.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라고. 아이들을 홀리고,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영양가 없는 괴상하고 요상한 이야기만 전한다고. 끝내 세상을 망쳐버릴 거라고. 정말 그랬을까.

어른들은 참 이름 짓기를 좋아한다. 무슨 세대다. 무슨 키드이다. 그 덕에 나는 텔레비전 키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나는 텔레비전 키드가 그 시절 어린이들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게 기쁘다. 어른들 몰래 무서운 비디오를 빌려서 텔레비전 앞에 모였던 친구들, 좋아하는 프로그램 시간에 맞춰 귀가했던 가족들, 반짝이던 나의 이야기들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거란 사실이 힘이 된다. 지나고 나니 텔레비전은 우리 세대의 가장 소중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지금의 어린이들, 청년들은 훗날 어떤 아이들이라 불릴까? 어떤 세대라 이름 지어질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재밌지 않은가? 나는 그런 마음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책방을 차렸다. 당신들의 시대를 멋지게 기록하고 싶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저의 시대는 멋진 시대예요' 당당할 수 있도록. 수많은 이야기와 예술가들 덕에 나는 그럴 수 있었다. 나의 세대를 사랑할 수 있었다.

세대의 이름이 조금 더 다정하길, 뿌듯하길 바라며 이야기를 마친다. 종종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에 지칠 때, 세상 곳곳의 문학과 책방들이 당신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성욱현<시인·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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