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쌀

  •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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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01  |  수정 2024-10-01 08:05  |  발행일 2024-10-01 제17면

[문화산책] 쌀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가까운 듯 먼 것이 문화가 아닌가 한다.

미국 갔을 때의 일이다. 모처럼 유명한 한국식당에 들렀는데, 휠체어를 탄 미국인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자신을 비만 환자라고 소개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외국 음식을 먹는 것이 취미생활이라고 말했다.

나는 신기했다.

서른 살이 넘을까 말까 한 젊은 여성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비만인 것도 기이했지만, 그 체중으로 음식에 집착하는 것도 걱정스러웠다. 음식집은 뷔페식당이었는데, 여성은 구태여 내 옆자리를 고집했다. 여동생이라고 소개하는 여성도 함께 앉았다.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음식 코너로 가더니 밥하고 김치만 수북이 담아오는 것이었다. 나의 놀람을 눈치챘는지 동생이라는 여자가, "한국음식은 밥이 최고로 맛있어요."

두 사람은 열심히 밥을 먹다가 비만녀가 갑자기 쌀에 대해서 언급하기 시작했다. 인도 쌀이 어떻고, 베트남 쌀이 어떻고, 캘리포니아 쌀이 어떻고 기염을 토하더니

"그런데"

비만녀가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나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한국에서는 쌀을 물로 씻는다면서요? 왜죠?"

나는 당황했다. 지구상에 쌀을 안 씻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애써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니 나의 영어가 짧았다. 땅에서 수확하여 기계로 탈곡을 하다 보니 먼지나 기타 이물질이 염려되어 밥 하기 전 물로 깨끗이 씻는 거라고 가까스로 말해 주었다.

푸른 눈의 비만녀는 미소를 띠며 내 이야기를 경청하더니 자기는 한국의 이천 쌀밥을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도 신이 나서 이천쌀밥은 한국에서도 최고로 꼽힌다고 엄지척을 해 보였다.

비만녀는 다시 밥을 몇 숟갈 뜨더니, "그러면 ~"

그녀는 궁금증이 많은가 보았다.

다시 숟가락을 놓고 나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한국에서는 밀가루도 물로 씻나요? 먼지나 이물질이 많아서?"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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