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은 사람들이 다소 냉랭하다고 하지만 지나치게 혼잡하지 않은 도시이다. 봄 햇살이 아주 야릇한데, 한번쯤 머무르고 싶은 이유가 될 만큼 매혹적이다. 겨울은 길고 눈이 많이 내려, 도시가 마비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묵묵한 이 계절에, 사람들은 와인을 준비하고 이웃을 초대한다. 이야기는 밤늦도록 이어지고 오지 못한 이웃을 걱정하며 그들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어느 틈에 긴 긴 겨울이 익어 간다.보스턴은 학문의 요람이다. 하버드와 MIT를 중심으로 무려 24개의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 가운데, 한국인의 빛나는 존재감도 두드러진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의 본거지이자, 바이오 허브로도 자리매김한 도시는 어제와 또 다른 아이디어로 연일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라이벌인 양키스와 야구 게임이 있는 날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Team Spirit'을 위해 유니폼을 입는다. 도시는 온통 빨간 양말로 하나가 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여러 이웃이 게임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목이 쉰 채로 돌아와야 했다. 그날, 레드삭스는 이겼고 'BK' 김병현이 폼나게 던진 날이었다.
도시는 오자와 세이지를 사랑했다. 그가 29년간 지휘했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교향악단이다. 시즌 패스를 이용하는 사람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른다. 심포니 홀 근처에 위치한 뉴잉글랜드 음악원(NEC)은 백혜선, 손민수, 그리고 천재 임윤찬이 소속된 대학이다. 필자의 집에서 고작 20여 분 거리에 이 거장들이 있다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니겠는가. 첫 음이 심장을 강타하지 않으면, 단 두 마디의 선율을 7시간이나 연습한다는 임윤찬은 그야말로 보스턴의 히어로가 아닐 수 없다.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숨이 트인다고 한다. 아이들이 많이 웃는다고 한다. 주류가 될 수 없는 편협한 곳이 아니라 기회를 주는 곳이라고도 한다. 만들려 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곳이라고 한다. 아들을 데리고 유학 왔던 지인은 아이의 키가 훌쩍 자라고 나서야 보스턴을 떠났다.
우리는 행복이란 단어보다 성공이란 단어를 더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찰스 강변에 가을이 시작되었다. 길게 뻗은 산책로는 붉게 물들어 갈 것이다. 친구가 손녀를 보스턴으로 유학 보내고 싶어 한다. 언젠가 청년이 된 그 아이와 베이글에 치즈크림, 클램 차우더를 곁들인 아침을 함께 하고 싶다.
그때쯤, 필자의 입가 주름은 더 깊어지고 제법 많은 흰 머리를 가지게 되겠지만, 그날의 아침은 눈부실 것이다.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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