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버킷리스트-해발 4130m에서

  • 이선민 트래덜반 대표·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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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16  |  수정 2024-10-16 08:07  |  발행일 2024-10-16 제19면
[문화산책] 버킷리스트-해발 4130m에서버킷 리스트(Bucket List) : 죽기 전에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 버킷리스트란 '나'로 존재하기 위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온몸을 던져보는 챌린지이다. 버킷리스트는 지도요, 빼곡한 목록은 나침반이요, 열쇠를 손에 꼭 쥐고서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문 너머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필자의 버킷리스트에는 여행이 주를 이룬다. 2020년 2월, 팬데믹의 습격으로 옷장 구석에서 깊은 동면에 들었던 배낭을 딱 3년 만인 2023년 1월에 깨워 메고서 향한 여행지는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네팔, 히말라야. 히말라야 산맥, 대자연, 매력적인 문화와 사람들의 모습은 팬데믹 이후 재개하는 첫 배낭여행지로 택할 이유로 충분했으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 온 감각이 쭈뼛하고 곤두섰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산소 부족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달래며, 공용 주방의 난로 불에 온기를 의지한 채 침낭 속에서 써 내려간 그날의 기록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2023.01.25. 수요일. 15:00 A.B.C(4천130m) 도착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인가. 눈은 펄펄 날리고 떠도는 구름과 수북한 안개는 나아갈 길을 막아서고 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한낱 미물 같은 존재인 인간을 내려다보는 길, 고요하다 못해 빙하수가 졸졸 흐르는 물줄기 소리 따위가 이목을 끄는 속세 소리 없는 길, 수목한계선의 키 작은 식물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외부인을 바라보는 길.

짊어진 가방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와도 같다 했던가. 출발하기 전 롯지에서 구매한 따또 빠니(네팔어: 뜨거운 물) 1ℓ가 바닥을 보이는데도, 매일의 사용량에 따라 비누의 크기가, 두루마리 휴지의 양이 줄어드는데도,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짊어졌는데도, 배낭 겉에 매달아둔 덜 마른 양말 한 짝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이어도로 가는 길인가. 은세계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어디가 종착지인지 모르면서 그저 도르체 다이(네팔어: 손 위 남자)를 믿고, 소리 없이 비스따리 비스따리(네팔어: 천천히) 걷고 또 걷는다. 저 멀리 형형색색의 룽타가 펄럭거리고 있다.

"Namaste. ANNAPURNA BASE CAMP(4천130m)"

기록으로 남긴 영상을 보고서야 알았다. 헐떡거리는 숨, 하얀 눈에 반사된 확장된 동공,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헛웃음, 그리고 떨리고 격앙된 목소리의 외침. "I can't believe it!"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버킷리스트에서 무엇부터 이루고 싶은가?

이선민<트래덜반 대표·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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