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
칠레는 헌 옷을 수입하는 나라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재판매되지만, 나머지는 버려지기도 한다. 아타카마 사막에는 버려진 옷들이 마치 거대한 무덤처럼 누워 있다는데, 이는 패스트 패션의 어두운 단면일지도 모른다.
겨우 '누워있는 옷'을 생각한다. 먼지로 뒤덮여 구석에 묻혀 있거나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까. '누워있는 옷을 산다'는 뜻은 새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널브러진 것을 다시 꺼내 입거나 재활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손가방으로 만들어 슈퍼마켓에 들고 나가거나, 아니면 머플러로 탄생시켜 산책길에 두르거나 하는, 그런 소박한 변신을 말하는 것일까.
필자를 이모라고 부르는 아이가 파란 물방울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모, 씨엘이 살짝 바래서 파스텔이 되었어. 정말 환상적이지? 누구라도 이런 색을 만들 수는 없을 거야" 아이는 예뻤다. 원피스는 헌 옷 가게에서 구입한 것이라는데, 언젠가, 환경오염을 불안해하며 새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날, 원피스는 씨엘의 푸르름이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게 바랜 채 가까스로 거리에 나섰다.
버림받은 유기견도 '누워있는 옷'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바닥에 움츠려 떨고 있던 강아지를 데려온 날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친구는 작은 생명을 품에 안고 '해피'라고 불러주었다. 이 아름다운 연민은 어디에서 왔는가. 불러주었기에 더는 움츠려 떨지 않아도 되었고, 더는 버려지지 않아도 되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서로에게 닿는 일이다. 서로의 마음을 부풀게 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도 그렇지 않은가. 시간에 밀리기 전까지는 꽤 괜찮았고 나름 주류였다. '맑눈광'인 시절도 있었더란 얘기다. 구겨진 것들이 언뜻 보기에는 허물어진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밀려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그 흔적은 침묵하지 않는다. '누워있는 옷'을 다시 입는 일은 그 옷의 오랜 이야기를 입는 것이고, 버려진 것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이다.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이 거기에 누적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아시는가? 갈피마다 기어이 눌러앉은 묵은 때는, 고스란히 빈티지로 승화되고, 빈티지는 절정의 품격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것은 더 깊이 있는 아름다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대체 알고나 계시는가?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