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 윤주씨 남자친구 이야기다.
윤주씨는 정말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반할 정도이다.
"남자친구가 눈 예쁘다고 하지요?"
나의 질문에 그녀가 펄쩍 뛴다.
"아아뇨. 그 사람 그런 말 안 해요!"
그럼 만나면 무슨 얘기 하느냐 물으니
"그냥 뭐 ~. 날씨 이야기도 하고"
듣고 보니 내가 다 서운하다. 날씨 이야기야 기상 캐스터나 결혼한 지 30년쯤 되는 노부부들에게 양보해도 되는 거 아닌가.
젊은 사람이 여자 친구의 아름다운 눈에 감탄이나 좀 하지.
TV에서는 한 술 더 뜬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여자가 남편에게 묻는다.
"자기 외국어 잘하지?
프랑스어로 사랑한다는 말은 뭐라고 해?"
"즈 뗌므" "독일어로는?" "이히 리베 디" "중국어로는?" "워 아이 니"
이탈리아어로는? 스페인어로는? 일본어로는?
신이 난 남자에게 여자가 재빨리 묻는다. "한국어로는?"
남자의 입이 순간 닫히고 만다. 한국어로는 생각이 안 나는 모양이다.
알아도 말할 수 없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그 말은 비밀에 부쳐두도록 악마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일까.
남자가 말한다. 다 아는 얘기를 왜 꼭 말해야 하느냐고.
여자가 대답한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하면 좀 어떠냐고.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는 시절이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다. 어쩌면 그때는 말을 하면 입이 부르트거나
전염병에 걸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에서는 돈을 아끼듯 말을 아껴야 한다고 가르치고, 마을 어귀에서는 마녀가 나타나서 사람들의 입에다 거미줄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
함무라비 법전 어딘가에도 말을 많이 하면 벌금을 부과한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상이 달라졌다.
꽃을 보면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주고, 새에게도 친절하게 말을 걸며, 과일에도 모차르트를 들려주는 시대가 되었다.
사랑인들 오죽하랴.
눈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를 두고 화를 내는 여자가 있을까.
당신 최고라고 말하는 여자 앞에 총을 빼 드는 남자가 있을까.
좋은 말은 아끼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랑도 워딩이다.
박기옥<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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