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름의 가치

  •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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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05  |  수정 2024-11-05 07:54  |  발행일 2024-11-05 제17면

[문화산책] 이름의 가치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필자는 김광석길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5분 거리에 있는 신천을 산책하려고 집을 나서면 김광석길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연신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김광석'을 주제로 찍을 것이다. '김광석길'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길의 벽화를 통해 김광석의 생애를 상상할 것이다. 제2, 제3의 김광석을 꿈꾸는 무명가수들의 버스킹공연을 보고 들으면서 한국 문화의 다양함과 풍성함을 추억으로 담아갈 것이다.

이제 '김광석길'은 대구뿐 아니라 국제적 대구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김광석'이라는 이름이 대구의 골목길을 명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름이 풍경이 되고 추억이 되고 꿈이 되는 것을 체감한다.

얼마 전 친구들과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꼬박꼬박 여행 비용 마련을 위해 적금을 붓는 5년은 설렘의 시간이었다. 우리들은 모임 때마다 여행 이야기를 중심으로 수다를 떨었다. 누군가 꼭 본토의 피자를 먹어봐야겠다고 하면 누군가는 파스타를 화제로 올렸다. 지중해의 하늘과 바다를 꺼내 보기도 하고 미켈란젤로와 단테를 소환하기도 하면서 달뜬 시간을 보냈다. 콜로세움과 트레비 분수는 절대 뺄 수 없다고 다짐도 했다.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려 앞쪽으로 몇 번이고 되돌아가 읽었던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펼치며 기원전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찍고 가는 패키지여행에서는 베네치아의 곤돌라 여행도, 카프리섬의 에메랄드빛 바다도, 로마의 휴일도 우리들의 상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은 '미켈란젤로 언덕'이다. 피렌체의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도 아니고 그 유명하다는 석양빛에 물들어서도 아니다. 가이드는 현재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소장된 다비드상의 복제품을 피렌체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에 갖다 놓고 '미켈란젤로 언덕'이라 이름지었다고 했다. 작은 언덕에 지나지 않는, 그래서 이름조차 없었던 언덕이 '미켈란젤로의 언덕'으로 명명되는 순간 유명한 관광지로 변모된 것이다. 지금 '미켈란젤로의 언덕'에는 다양한 외국인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이제 '한강'이라는 이름은 K문학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듯 이름이 지니는 가치는 무한대라 할 수 있다. 때로는 역사의 상징이고 한 사람 생애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 국회가 국정감사로 시끌벅적했다.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나 이름을 불러대는 사람이나 훗날에 어떤 이름값으로 기억될지 참 궁금하다.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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