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쓰나미] 가뜩이나 힘든 TK경제는 좌불안석

  • 이지영,박주희,윤정혜,박용기,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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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12 20:13  |  수정 2024-11-12 20:19  |  발행일 2024-11-13
[고환율 쓰나미] 가뜩이나 힘든 TK경제는 좌불안석
코스피 2,500선 아래로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2일 코스피는 49.09p(1.94%) 내린 2,482.57로 장을 마쳤다. 코스닥은 18.32p(2.51%) 내린 710.52로 마감했다. 원달러 환율은 2년 만에 종가 기준 1,400원을 넘어섰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원·달러 환율이 2년 만에 1천400원(종가 기준)을 뛰어넘어서면서 산소호흡기를 갓 떼고 경기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대구경북 산업 기상도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산업 구조인 만큼 충격파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고환율·고금리·고물가 등 이른바 '신(新) 3고(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이어서 사실상 '시계제로'상태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당분간 1천400원대 고환율 유지될 듯
전문가들은 당분간 고환율이 지속할 것으로 본다. 관세 인상,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요약되는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기조 때문이다. 트럼프의 확장 재정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추가 기준금리 인하 지연과 채권 금리 상승, 강 달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옥영경 DGB금융지주 ESG전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트럼프의 관세 부과 정책은 수출기업에 분명 부담으로 작용하고, 미국의 중국 견제가 심해질수록 대중 수출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미국의 보호무역정책으로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1천400원대에서 내려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도 "앞으로 관세 부과 등 정책 때문에 대미 수출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서울 아파트 시장과 가계부채 등 여러가지 정황상 추가로 내년 1월 이전엔 금리 인하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수입물가 상승, 기업 경영악화로
대구경북지역 수출입 기업은 고환율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다. 특히 지역 기업 대부분은 환리스크 관리가 취약한 중소·영세기업인 탓에 외환 변동성에 대비한 환변동보험 등의 대비책이 요구된다.


원·달러 환율 상승 시, 한동안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환전을 통해 수익이 증가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재집권으로 고환율·강달러 기조가 이어지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원자재를 해외에서 조달해 가공·납품하는 기업들은 원가 상승 압박으로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안봉주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팀장은 "고환율이 지속하면 원자재 수입가격도 동반상승해 국내 외국환은행 등과의 환헤지 계약, 환리스크를 줄인 환변동보험 등을 통해 환율 변동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더욱이 대구 기업들은 환율 변동성에 취약한데다 수출 실적마저 감소세다.


대구수출실적 통계 시스템을 보면, 대구 수출은 6월 7억5천100만 달러에서 7월 7억2천100만달러, 8월 6억9천400만달러, 9월에는 6억2천200만달러로 넉달 연속 감소세다.


이근화 무역협회 대구경북본부 차장은 "중소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일부 누리더라도 수출 물류비, 원자재 수입비 증가 등에 대한 압박으로 수입기업의 원가상승도 불가피하다"고 예측했다.


포항 산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수출이 주를 이루는 철강과 2차전지 관련 기업이 많아서다. 기업들 대부분이 원자재나 중간재를 수입한 뒤 최종제품을 만드는 구조다. 고환율 변동성은 가공할 만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2차전지 산업은 대부분 수출물량이다. 원재료를 달러로 구매하고, 제품도 달러로 판매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환전 시 매출 실적 개선에 일부는 도움이 된다"면서도 "원재료 가격 변동 폭이 심한 업종이라 환율보다는 원재료 가격에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 편"이라고 했다.


포스코는 석탄과 철광석을 수입하지만, 제품 수출을 통해 일정 부분 외화 수지를 헤지(hedge, 위험 회피)하고 있다. 다만 고환율 기조가 장기화하면 국내외 철강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 이는 곧 수익성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포스코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철강 수요가 위축된 탓에 환율 인상에 따른 원자재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외화 수지 노출분을 최소화하면서 환율 변동성이 경영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구미 기업들도 갑자기 오른 원·달러 환율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 초 구미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구미 기업들의 경영계획 수립 시 예상 환율은 달러 당 평균 1천263원이었다. 구미의 한 수출기업 대표는 "경영계획 수립에는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며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고금리로 이어진다. 또 다른 경영 리스크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건설업계는 망연자실
가뜩이나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역 건설업계는 건설 원자재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을 크게 우려했다.


지역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국제 유가와 철광석·스크랩·구리·목재 등 건설 원자재 가격은 코로나19 팬데믹·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에서 벗어나 하향 안정세였다. 하지만 트럼프 재집권이 확정되면서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예고되면서 환율이 급등하고, 자연히 건설 원자재 비용부담도 커질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HS화성 관계자는 "코로나19와 러우·중동 전쟁으로 한동안 급등했던 원자재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는 점은 건설업계에 긍정적 신호였다. 하지만 고환율이 이 흐름을 마구 희석하는 모양새"라며 "환율 상승이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를 상쇄시킬 것이다. 건설 자재비가 다시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물가상승압박에 내수시장 위축
고환율 여파로 내수시장의 바로미터인 지역 백화점, 대형마트, 자영업자들의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유가 등 수입 물가가 오르면 자연히 소비자 물가도 상승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1%대로 안정화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릴 여지가 높다.


대구 주요 백화점들은 가구, 패션, 명품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본다. 대구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환율이 계속 고점에 머물면 수입 고가 상품들은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이는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고 백화점 매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우려했다.


대형마트들은 가격 인상 압박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입처 다변화, 유로화 등 결제 통화 전환, 해외 직소싱 강화 등을 검토 중이다. 특히 과일이나 농산물의 경우, 국내산 물량을 확대해 고환율 영향을 줄일 생각이다. 비교적 저렴한 자체 브랜드(PB) 상품도 늘어날 전망이다.


요식업계도 안절부절이다. 원맥과 원당 등 주요 수입 원자재 가격상승이 음식물 원가 상승을 압박할 수 있어서다. 원맥은 밀가루의 원료, 원당은 설탕의 원료다. 라면, 빵, 과자 등에 필수 재료들이다. 신호범 음식업중앙회 대구시지회 처장은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 결국 가격 인상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돼 쉽게 실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정혜·박주희·박용기·전준혁·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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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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