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물을 주고 둥근 덮개를 주려는 순간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잘 있어" 그는 꽃에게 말했다. 그러나 꽃은 대답이 없었다. "잘 있어" 그가 한 번 더 말했다"
어린 왕자는 떠나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꽃과의 이별에서 큰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사랑함에도 떠나야 하고, 떠나면서도 여전히 그 꽃을 마음에 품어야 했으리라. 어쩌면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일도, 그리고 밤낮을 사는 일도 이처럼 아름답고도 못내 슬픈 것이 아닐까. 어린 왕자처럼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야말로 그 아련한 사랑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서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해, 여름의 막바지를 향해가던 8월이었다. 길을 걷다 문득 발끝까지 활짝 피어난 채송화를 발견하고, 몇 포기를 데려와 일상 속에 두었다. 하루하루 무색하지 않게 피고 지기를 거듭하던 그것은, 꽃을 피운다는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선뜻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쏟아내었다. 채송화에게 여러 불안한 마음들을 덜어내고 나면, 어느새 은은한 빛이 스며들었다. 굳이 비밀을 감출 이유는 없었다. 채송화는 가을볕에 더욱 물들더니 겨울의 문턱에 닿을 무렵, 목을 가누지 못했다. 녹보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으나 채송화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필자에게 채송화는 여러 별을 여행하며 끊임없이 떠오르던, 어린 왕자의 잊히지 않는 장미꽃과 같았다.
꽃들은 일상 속에 불쑥 나타나 무심한 듯 우리를 살핀다. 피어나는 순간부터 시들어가는 여정에 이르기까지, 그 길지 않은 동안에 맑은 우주를 머금는다. 때로 덧없고도 아름다운 그들은 더 이상 무엇으로 남지 못하지만, 연극처럼 존재의 의미를 은밀히 흉내 내곤 한다. 그러다 어느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다. 아쉽게도, 그들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는 까닭이 어쩌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서정은 덧없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덧없기에 더욱 애틋한 것이다. 꽃이야말로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어쩌면 꽃인 것이다. 저마다의 계절을 맞이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더는 머무를 수 없게 된다. 유한함 속에서 한순간이라도 꽃처럼 아름답기를 꿈꿀 뿐이다. 기어이 지나가야만 하는 것들을 다시 어쩌지 못하고 다음 계절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마침, 겨울에 피어야 할 꽃들이 가을을 서두르지 않았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어린 왕자는 떠나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꽃과의 이별에서 큰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사랑함에도 떠나야 하고, 떠나면서도 여전히 그 꽃을 마음에 품어야 했으리라. 어쩌면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일도, 그리고 밤낮을 사는 일도 이처럼 아름답고도 못내 슬픈 것이 아닐까. 어린 왕자처럼 소중한 이들과의 이별이야말로 그 아련한 사랑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서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어느 해, 여름의 막바지를 향해가던 8월이었다. 길을 걷다 문득 발끝까지 활짝 피어난 채송화를 발견하고, 몇 포기를 데려와 일상 속에 두었다. 하루하루 무색하지 않게 피고 지기를 거듭하던 그것은, 꽃을 피운다는 단순한 의미 그 이상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선뜻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쏟아내었다. 채송화에게 여러 불안한 마음들을 덜어내고 나면, 어느새 은은한 빛이 스며들었다. 굳이 비밀을 감출 이유는 없었다. 채송화는 가을볕에 더욱 물들더니 겨울의 문턱에 닿을 무렵, 목을 가누지 못했다. 녹보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으나 채송화의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필자에게 채송화는 여러 별을 여행하며 끊임없이 떠오르던, 어린 왕자의 잊히지 않는 장미꽃과 같았다.
꽃들은 일상 속에 불쑥 나타나 무심한 듯 우리를 살핀다. 피어나는 순간부터 시들어가는 여정에 이르기까지, 그 길지 않은 동안에 맑은 우주를 머금는다. 때로 덧없고도 아름다운 그들은 더 이상 무엇으로 남지 못하지만, 연극처럼 존재의 의미를 은밀히 흉내 내곤 한다. 그러다 어느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린다. 아쉽게도, 그들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언제나 슬픔을 동반하는 까닭이 어쩌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서정은 덧없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덧없기에 더욱 애틋한 것이다. 꽃이야말로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는 어쩌면 꽃인 것이다. 저마다의 계절을 맞이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더는 머무를 수 없게 된다. 유한함 속에서 한순간이라도 꽃처럼 아름답기를 꿈꿀 뿐이다. 기어이 지나가야만 하는 것들을 다시 어쩌지 못하고 다음 계절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마침, 겨울에 피어야 할 꽃들이 가을을 서두르지 않았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고경아〈시인·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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