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파트

  • 권은용 예술학 박사·성균관대 겸임교수·대구간송미술관 대외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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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1-18  |  수정 2024-11-18 08:29  |  발행일 2024-11-18 제16면

[문화산책] 아파트
권은용 <예술학 박사·성균관대 겸임교수·대구간송미술관 대외협력팀장>

멀리 있는 동생이 카톡을 보냈다. 조카네 학교에서 한국의 아파트가 난리라고 한다. 한국에서 언제 아파트가 난리가 아니었던 적이 있던가. 그런데 아직 초등학생인 조카와 그 친구들이 아파트에 꽂혀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조카가 꽂혀있는 아파트는 부동산도 아니고 별빛이 흐르는 아파트도 아니고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블랙핑크 로제의 신곡이다. 미국 싱어송라이터인 부르노 마스(Bruno Mars)가 곡에 참여했는데, 그는 2010년대 최대 빌보드 1위곡을 가진 가수이자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가장 빠른 시간에 빌보드를 점령한,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월드스타이다. 2023년에 현대카드 초대로 내한했었고, 그때 표를 못 구한 것이 아직까지 마음에 한으로 남아있다.

그런 부르노 마스가 로제랑 협업을 했다고? 이것 참 대단한걸, 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동생이 말했다. 언니 여기서는 지금 부르노 마스보다 블랙핑크랑 로제가 더 유명해. 세상에, 참 신기한 일이다. '마이 페이버릿 싱어 이즈 비틀스' 하면서 영어공부 했던 나의 학창시절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BTS가 내 드림밴드인 콜드플레이(Coldplay)랑 컬래버한 곡을 발표해서 벅차했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이다. 이제 한국가수가 해외 차트에 곡을 올리고 월드클래스에 있는 가수들과 같이 작업하는 일에 놀라기가 머쓱할 만큼 K-pop과 K-Culture는 전 세계 문화지형도의 메인스트림에 있다.

음악은 음식이나 향기처럼 시절을 소환하고 정서를 공감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는 전람회였는데, 이들의 노래가 들리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 시간들을 떠올린다. 독서실에서 나와 워크맨을 들으며 집에 가던 길, 야자를 마치고 학교 밖으로 나왔을 때 코끝에 느껴지는 찬 공기와 겨울 냄새까지 생생하다.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도 그 시절을 소환하는 곡이다. 음악의 도입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귓가에는 종소리가 들리고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다. 이미 겨울의 시작, 크리스마스 기분이 물씬 느껴진다.

지금 로제의 '아파트'는 몇 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는 물론 영국과 아시아권 차트를 점령하고 있다. 숏츠나 릴스에서는 국적을 넘어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고 장난치고 웃고 춤추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케이팝이 가지는 국제적인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원하면 얼마나 될까? 자료들은 조 단위 효과를 이야기한다. 경제적 파급력이나 효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들과 같은 시기 같은 노래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지역과 세대를 넘어 우리의 정서, 우리의 문화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 든든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조카를 만나면 꼭 아는 척을 해야겠다. 이모도 아파트 노래 좋아한다고.

권은용 <예술학 박사·성균관대 겸임교수·대구간송미술관 대외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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