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꼬리의 춤

  •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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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03  |  수정 2024-12-03 08:03  |  발행일 2024-12-03 제17면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금호강 하구 모래톱 근처에 왜가리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서 있다. 졸린 눈으로 모가지를 움츠려 감아 내렸다. 날갯죽지도 축 처졌다. 가느다란 발목은 거쳐 가는 물조차 무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참 평화로운 한낮을 왜가리도 나도 즐기고 있었다.

함께 산책길을 나선 친구가 "왜가리도 낮잠을 자나?"라고 했다. 뭐라고 답을 하려는데, 새는 잔뜩 주눅 든 모가지를 쭉 뻗더니 순식간에 붕어 한 마리를 채어 올린다. 하늘로 치켜든 부리에 걸린 붕어의 꼬리가 춤을 춘다. 펄떡펄떡! 튕겨져 나온 햇살의 비늘도 덩달아 허공에서 현란하다. 새는 두어 번 부리를 찹찹대더니 길게 세운 울대 속으로 꼬리의 춤을 삼킨다. 꿀꺽! "이야, 대단타!" 멈춰선 사람들이 왜가리를 보고 박수를 쳤다.

나는 왠지 모르게 심통이 났다. 끝까지 꼬리의 춤을 감상하기로 작정했다. 수직으로 길게 뻗은 둥글고 컴컴한 무대에서 부드러운 S자로 흘러내리는 곡선의 맵시를 눈에 새겼다. 저 처연한 '꿈틀!' 나는 춤사위가 잦아들 때까지 붕어를 위한 박수를 보냈다. 강물이 켜는 현악기의 파장 같은 물무늬가 다시 평온해졌다. 새는 눈을 한 번 '끔뻑'하고는 다시 모가지를 움츠렸다. 산책하던 사람들도 다시 제 갈 길을 재촉했다. 붕어의 '꿈틀'을 기어코 '춤'이라 우기며 한참을 더 서 있던 나도 친구의 이끎에 발길을 돌렸다. 이제 왜가리만 남았다.

대학을 졸업하며 김동인의 '대수양'과 이광수의 '단종애사'를 비교하는 논문을 썼었다. 논픽션에 근거한 픽션이지만 두 작가의 시각차가 놀라웠다.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쏠리지 않게 읽어내려 애를 썼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고 다짐한 기억이 있다. '대수양'은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수양대군은 강한 군주로서 훌륭한 정치가이자 통치자로 묘사되었다. '단종애사'의 수양은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부정적, 비판적 시각으로 그려졌다. 논문의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역사는 승자의 역사라고 흔히들 말한다. 수양이 왕이 되었으니 수양의 입장이 합리화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힘없고 어린 단종의 이야기가 '단종애사'로 탄생했다. 이건 어쩌면 생육신이나 사육신의 목숨값 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다. 사육신과 생육신은 어쩌면 단종의 꼬리가 아니겠는가. 강자 앞에 속절없이 먹혀야 했던 꼬리의 마지막 춤이 후세 소설가에 의해 현란하게 그려져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지 않은가. 강가에서 붕어를 낚시한 왜가리를 보며 약육강식의 순리를 읽었다. 하지만 나는 꼬리의 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우리 시대의 꼬리들도 몸통을 지키기 위해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꼬리도 몸통의 일부라 생각하며.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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