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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
돌아보면 30대 필자는 직장생활과 육아에 지쳐 있었다. 그 시절, 치통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을 때 가까운 친구가 말했다.
"사람 팔자가 인상으로도 온다는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둡니? 억지로라도 웃어라."
친구로부터 그 말을 들은 후 거울을 사서 책상 앞에 두었다.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고 있는 내 모습이 거울에 언뜻 비치면 그렇게 보기가 흉했다. 아이들은 얼마나 참혹할까 싶어 표정을 바꾸려 얼른 고개를 돌리곤 했다. 웃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충격이었다. 어금니를 두 개씩 세 개씩 지그시 깨물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연습을 했다. 표정이 바뀌니 말도 저절로 곱게 나왔다.
그즈음에 졸업한 지 한참 지난 첫 제자들과 만날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들의 출석번호를 알고 있을 만큼 각별한 제자들이다. 그 시절의 추억에 흠뻑 빠져가는데 덩치가 큰 청년이 들어오더니 내 옆에 앉았다. 학교 대표 씨름선수였던 학생이다. 여쭤볼 게 있다고 했다.
"선생님, 제가 공부 못했던 거 아시죠? 그런데 왜 그렇게 공부를 시키셨어요? 공부 안 해도 저 지금 대학 가서 씨름하고 있어요. 안되는 공부만 강조하고 혼내셔서 제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세요?"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초년 교사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선생 최고의 자질이고 본분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생각과 행동의 오류를 지적받은 것이다. 이 일은 필자가 학생을 있는 그대로의 소중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선생이 되려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각자의 소질을 찾아서 그 소질을 살리는 것이 교사의 역할임을 깨치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 앞에서 많이 웃으려 애를 썼고 따뜻한 격려가 담긴 말을 하려 노력했다.
복도를 마구 뛰고 달리는 학생을 보면 '뛰지 마' 대신에 '걸어 다녀'라고 했다. 아침에 일찍 등교하는 학생을 보면 부지런하니 나중에 크게 성공할 거라 말했다. 책을 많이 읽는 학생에게는 '백과사전'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친구에게 양보하는 학생을 보면 '너희 엄만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 너같이 멋진 아들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 덕분인지 우리 반 학생들은 다툼이 거의 없었고 다툼이 일어나도 빠르게 사과하고 해결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나쁜 말이 뇌리에 박히면 털어내기가 어렵다. 내가 하는 말은 상대방에게 닿기 전에 내가 가장 먼저 듣게 된다. 기왕이면 상처가 되는 말보다는 기분 좋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퇴직을 앞두고 짐을 꾸릴 때 거울을 제일 먼저 챙겼다.
"웃는 모습이 곱네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늘어가지만 곱게 웃어 예쁜 주름을 만드는 것이 인생 후반의 개인적 목표 중 하나다.
김학조 <시인·대구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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