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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
차례를 지내고 세배 순서가 되었다. 2대보다 3대가 압권이었다. 미취학과 취학 아동으로 나뉘었다. 초등생들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절을 올린 후 무릎을 꿇었다. 어른들이 몇 마디 덕담을 건네는 동안에도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세뱃돈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벌써 예상 금액이 들어 있었다. 어젯밤 조심스럽게 명단과 금액을 뽑아 보았다. 연장자순이 아니라 계산하기 좋게 고액 순으로 분류했다. 어른들이 지갑을 열자 두 손을 들고 알뜰하게 한 바퀴 돌아 챙겼다. 행여 건너뛰어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미취학 아동으로 내려오자 모든 룰이 흐트러졌다. 동서남북으로 엉덩이를 치켜들고 한바탕 절을 올린 꼬맹이들은 받은 세뱃돈을 쪼르르 엄마에게 갖다 바쳤다. 형들처럼 한 바퀴 도는 것도 없었다. 한 사람이 주면 그것만 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스스로 대견하여 폴짝폴짝 뛰기도 했다.
상이 차려지고 어른들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 아이들에게는 밥이 먼저 제공되었다. 닭볶음과 갈비찜과 갖은 나물이었다. 탕국은 공동으로 중앙에 서너 그릇 놓았다. 먹는 동안 부엌에서 과일을 챙기다가 이상한 기류를 느꼈다. 아이들이 없어진 것이었다. 거실에서는 어른들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애들은?"
"침대 방요."
칼을 놓고 침대 방문을 열었다. 하이고! 침대 위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져 있었다. 중학생이 태블릿을 켜 놓고 앉은 주위로 조무래기들이 빙 둘러 앉아 있었다. '겨울왕국'을 보고 있는 참이었다. 얼마나 진지한 지 G7 회의가 따로 없었다.
네 살짜리 막내까지 손가락을 물고 화면에 꽂혀 있었다. 얼굴을 박고 열중하느라 내가 들어간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만의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을 객이 되어 서 있다가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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