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황혼 육아

  • 신노우 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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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24  |  수정 2025-04-24 08:18  |  발행일 2025-04-24 제16면
[문화산책] 황혼 육아
신노우〈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매일 아침이면 선물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눈을 또랑거리며 '할아버지!' 부르며 내 품속으로 달려든다. 금방 집안에 적막감이 밀려나고 생기가 돈다. 새벽 운동을 같이하는 분들의 화두(話頭)가 황혼 육아다. 팔십 대 초반의 어르신이 서울로 올라가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손주를 돌봐주었단다. 그 후유증인지, 부부가 허리 수술과 위암 수술을 하고 내려왔노라 하며 스스로 키우도록 맡지 말라고 일갈한다. 귀가하여 손주가 태어나면 자식들이 알아서 키우도록 함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자,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둘째 아들네는 부부가 같은 직장에 근무한다. 손녀가 태어날 즈음에 아들이 집에 들렀다. 한참을 도스르다가 손녀가 태어나면 좀 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이쿠,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찰나에 아내는 '알았다'며 간단명료하게 답을 줘 버린다. 아들이 돌아간 뒤 아내를 바라보았다. '내 손녀이고 아직은 건강하니까 내가 키워 주고 싶다'고 눙친다. 인생 선배의 조언 따라 판단한 나만 비정한 사람이 되었다.

며느리가 출근길에 손녀를 우리 집에 맡긴다. 아내는 분유를 먹이고 안아서 둥개질로 연신 벙실거리며 신바람이 난다. 나 역시 입을 꼬물거리며 방긋방긋 웃는 손녀가 귀여워서 강의나 봉사활동이 없는 날에는 같이 맴돈다.

손녀는 조작거리며 걷기 시작하여 자라면서 블록 쌓기, 그림 그리기, 병원 놀이, 숨바꼭질을 같이하자고 졸라댄다. 함께 놀아주다 보면 때론 성가시고 지치기도 한다. 그래도 다음 날 아침에 손녀가 올 시간이면 거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추울까 봐 전기장판 코드를 꽂은 뒤, TV 어린이 방송 채널로 얼른 맞춰 놓는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느 날 직접 만들었다며 카드를 선물로 내밀었다.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려요'라며 삐뚤빼뚤 쓰였다. 그 뒤에도 곧장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내게 선물한다.

그동안 손녀 출생 때부터 성장 과정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모두 담았다. USB에 정리해서 손녀에게 주면 뜻깊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아들 부부가 매일 집에 오니까 컴퓨터, 휴대전화 사용이 궁금하면 즉시 해결해 준다. 필요한 물건 구매나 집에 손볼 곳이 있을 때도 일사천리로 마무르고 해결해 줘서 고맙다.

일요일이라 손녀가 집에 왔다. 나를 주려고 쿠키를 만들었다며 하나 집어 입에 넣어준다. 손녀의 마음처럼 달보드레한 맛이다. 손녀를 돌보지 않았다면 이런 살가운 행복을 느끼지 못했겠지. 두 아들 부부에게 서로 의지하도록 둘은 낳는 게 어떻겠냐고. 바람대로 손주가 다섯이다.

신노우〈수필가·시인·대구문인협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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