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는 지금도 멀다. 남북은 오랜 단절 상태고, 북미 협상도 교착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재와 도발, 상호 불신만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길이 없지 않다. 정치가 아닌 경제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는 접근과 김대중 정부가 시도했던 햇볕정책의 방식이 지금 북미 관계에도 유효할 수 있다.
햇볕정책은 군사·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경제와 교류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이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신기능주의적 접근이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같은 실질적 협력이 남북 신뢰 구축의 토대가 됐다.
북미는 그 반대였다. 비핵화, 체제보장, 종전선언 등 정치군사적 문제해결이 우선이었다. 실질적인 경제교류는 시도조차 없었다. 뉴욕 필하모니 평양 공연, 악동 데니스 로드맨 선수가 포함된 묘기농구단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 평양 방문' 등 문화체육 교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벽을 넘기 어려웠다.
정치가 막히면 경제로 우회할 수 있다. 상상해보자. 양각도 호텔에 스타벅스가 입점하고, 고려호텔에 맥도날드가 문을 연다. 북한 주민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미국 투자자가 평양을 오가며 사업을 타진하는 장면은 단순한 장사가 아니다. 체제 간 신뢰와 적대 완화의 상징이다. '경제는 곧 정치'라는 말이 여기에서 힘을 가진다.
북미는 과거 두 차례 정상회담까지 열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개인적 신뢰는 존재했지만 이를 떠받칠 구조적 협력 채널이 없었다. 군사와 정치만으로는 신뢰를 쌓기 어렵다. 유럽 통합도 석탄과 철강 공동체에서 시작됐듯, 북미도 시장의 연결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북미 간의 전통적인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남북대화가 끊긴 상태이고, 북한은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경제와 교류 중심의 실용적 대북정책을 추진한다면 판이 달라질 수 있다. 남북 교류의 복원과 동시에 북미 간 연결도 가능해진다. 당장 관세협상이 중요하지만 남북 관계도 염두에 두고 이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제 평양에 스타벅스가 들어서는 상상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허황된 구호가 아니라, 북미 적대관계 해소의 현실적 해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이 남북 간 얼어붙은 관계를 녹였듯, 북미에도 햇볕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정치보다 경제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G7 정상회담에 초청돼 간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크다.
평양의 스타벅스 한 잔이, 한반도 평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 지금은 상상일 수 있지만, 평화는 언제나 상상에서 출발했다. 경제가 평화다.
김두현 전 대구 수성구의원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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