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욱의 민초통신] 흐린 물엔 더러운 발을 씻네

  •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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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5 06:00  |  발행일 2025-08-04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무더위는 어쨌든 입추(7일), 말복(9일), 처서(23일)를 지나며 조금씩 누그러질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권의 '불덩어리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당의 목숨', 생존과 해산을 건 양당의 건곤일척 대결이 8월 첫 주부터 뜨겁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싸움은 8월22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넘어, 어쩌면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공세의 고삐는 민주당이 쥐었다. 국민의힘은 당 해산 압박을 받으며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치 지형과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엄 내란 탄핵 과정에서 극우화 비난에 휩싸인 야당이 살길은 사실 환골탈태, 혁신뿐일 터다. 그럼에도 그걸 않고 버티려는 강성 '찐윤'이 당을 또 어디로 끌고 갈지 역시 아무도 모르는 형국이다.


# 위헌 정당 해산 대격돌


이번 싸움 포문은 민주당이 열었다. 2일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정청래 의원은 취임 첫마디로 '국민의힘 해산' '내란 세력 척결'을 외쳤다. 국민의힘과의 협치 질문에는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다. 여야 개념이 아니다"라고 잘랐다. 12·3 이후 한국의 정당 체제는 정상적 여야 관계가 아닌 '민주주의 말살, 헌법 파괴 세력(국민의힘) 대 수호 세력'의 대척 구도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검을 통해 국민의힘 내부에 내란 동조 세력, 방조자, 협력자들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자연스레 '위헌 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며 "그때 당 대표로서 현명하게 판단하겠다"라고 했다. 당이 앞장서 해산을 요구하지는 않더라도, 여론을 보아가며 총대를 메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등 내란에 대해) 진정으로 사과·반성·성찰하지 않고 아직도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이 국민의힘에 있다면 그들과 어찌 손을 잡을 수 있겠나", "악수도 하지 않겠다"라고 못을 박았다.


국민의힘은 발끈했다. 수석대변인 논평을 통해 "정 대표는 야당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한 초유의 여당 대표"라며 "국정운영의 한 축인 야당을 적대시하고 악마화하는 공격적 인식이 용렬하기 그지없다"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정 대표가 최근 '내란 종식' 명분을 걸고 국회 의결로 위헌 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가능하게 하는 반헌법적 법안을 발의, '야당 말살' 시도에 나섰다"라고 성토했다.


8·22 전당대회 당권주자로 나선 이들의 반발도 거셌다. 윤석열, 극우와의 절연을 외치는 안철수 의원조차 페이스북에 '정청래 대표, 그 입 다무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첫 일성부터 망언"이라고 쏘아붙였다. 또 "야당과 손잡지 않겠다? 이는 곧 선전포고며 입법 폭주 예고"라고 비난했다.


# "악수도 하지 않겠다"


김문수 후보는 더 나갔다. "이재명 '총통독재'의 내란 몰이인 국민의힘 해산에 맞서 싸우자. 지금 해산돼야 할 당은 우리가 아닌 더불어민주당"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는 '정치 위에 망치'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라며 "쇠망치 같은 날 권력과 휘두름의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자리를 대체해 야당은 죽이고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을 해체하겠다는 전면전 선포"라고도 했다.


장동혁, 주진우 후보도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 정당 해산 주장은 강성 지지층만 보고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내놓은 발언이니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조경태 후보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부정선거 음모론자, 전광훈 목사 추종자 그리고 '윤 어게인' 주창자들과 확실히 절연해야 한다"라며 탄핵을 부정하고 극우의 손을 놓지 못하는 후보가 당 대표가 된다면 민주당이 망설임 없이 국민의힘 해산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윤 어게인' 극우 세력 절연 등 인적 쇄신을 주장하는 조경태, 안철수의 말이 상당수 국민의 동조와 지지를 받는 건 맞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윤석열 복귀를 주장하고, "전한길이 당 대표를 만들 것"이라며 후보 면접까지 치르는 극우 선동가의 오만한 작태에 반감이 높아진 것도 분명한 일이다. 오죽하면 그 당의 전 최고위원조차 전 씨 입당과 그 추종 세력 '친길파'를 지적하며 "국민의힘은 영혼을 빼앗긴 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로 변해가고 있다"라고 자조했겠는가. 당 지지율은 10%대로 추락한 데다 "지지층은 오직 70대와 TK만 남았다"란 한탄이 나올 지경까지 되었겠는가.


그러나 한편 다른 측면에서 야당의 지리멸렬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관저 출동 체포 저지' 의원 45인과 계속 늘고 있는 3대 특검 수사 대상자들까지 합친 인적 쇄신 과정에서 야당의 풍비박산이 필연으로 닥쳐올 것이란 우려다. 이는 결국 여당의 1.5당 화, 독주체제로 이어지다 보수의 약화, 궤멸로 귀결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기도 하다. 그런 판에 던져진 새 여당 대표의 "악수도 하지 않겠다"란 발언은 국민에게 공연한 근심만 하나 더 안겨준 꼴이 된 셈이다.


#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맹자'에 창랑자취(滄浪自取)란 고사성어가 있다. 물이 맑고 흐린데 맞추어 처신한다는 뜻으로 칭찬이나 비난, 상이나 벌을 받는 게 다 스스로 만든 거란 뜻이다. 2012년 박희태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돈 봉투' 사건 실행자로 지목되자 물러나며 이 표현을 들어 화제가 됐다.


공자가 제자들과 학문을 논할 때 창밖에서 아이들 노랫소리가 들렸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빨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는다네." 공자가 그걸 듣고 무릎을 치며 말했다. "저 봐라. 물이 맑으면 사람들이 소중한 갓끈을 빨지만, 물이 흐리면 더러운 발을 씻는다지 않느냐. 사람이 물빛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지만 알고 보면 창랑의 물이 스스로 상황을 만든 것 아니겠느냐" 현명한 옛 임금들은 연못에 탁족(濯足) 대를 만들고 정사(政事)의 잘잘못이 그 누구도 아닌 제 탓임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곤 했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 창랑자취의 정신을 찾는 건 요원한 일이 돼버렸다. 공정·상식·법치를 외다시피 했던 친위 쿠데타 전직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제 탓은 않고 속옷 바람 드러눕기로 법 집행에 저항, 온 국민의 부끄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국회에 백골단을 불러들이면서까지 내란 우두머리를 감싸고, 법원을 파괴한 폭민의 편에 서고, 헌법재판소 판결을 내심 부정하면서 '윤 어게인'을 정당 구호인 양 외치던 이들도 마찬가지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정청래 대표는 야당과의 협치와 대화를 부정한 데 대해 사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야당 악마화와 말살 시도' '대화 타협정치의 거부' 등 흐린 물 프레임은 짜였고 한 발은 이미 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프레임으로 정치 지형과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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