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삶 전부를 바쳐 자신에게 그려진 웅덩이를 게워낸다
그 불거져오는 얼룩에 뒤덮이지 않으려고
옥수수수프 위 후추나 헐떡이는 광어 대가리를 뒤집어쓴 천사채처럼
할 일을 다 하고도
주사위 굴릴 순서가 오지 않는
인생의 불경기를 살기도 한다
한 사람이 삶을 다 바쳐 모아둔 혼잣말이
스포이트에 맺힌
단 한 방울의 독극물이 될 수 있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갈증 없는 눈물
자 이제 한번 흘려보시게
권유받는 슬픔 속에서 친구의 비밀을
덜컥 고백해버릴 텐데
그 웅덩이에 걸음을 빠뜨릴 텐데
- 서윤후 "들불 차기"
이 시는 자기 몸속에 웅덩이를 간직한 자들의 고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혼잣말이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혹자는 "중학생처럼 말하고 싶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시의 화자에게 말한다. '어서 어른이 되시게. 이제 그만 자라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어른의 세계'란 게 기껏 규격과 위선으로 데워진 옥수수수프라면 어쩔 건가. 혹자는 그들에게 공감을 권하지만, 그들에게 공감은 시도의 영역이 아니라 비밀의 영역이다. 서둘러 나눠가진 내밀한 슬픔―그들의 웅덩이를 보지 못한 자들이 헛된 충고에 매달린다. 그들은 이미 치명적인 삶을 불경기처럼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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