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최근 대구시에서 눈여겨볼만한 움직임이 있다. 오는 8월 7일, 대구시 관내 5개 의약단체(치과의사회, 의사회, 한의사회, 약사회, 간호사회)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가 손을 잡고 '불법개설기관 근절 및 사전예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 일견 행정적 행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협약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불법개설의료기관이란 의료인이 아닌 자가 병·의원을 개설하고 의료인을 고용해 운영하는 행위다. 일명 '사무장 병원'이라 불리는 이들 기관은 법적으로 명백히 금지된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우선시하는 몇몇 비양심적 자들에 의해 여전히 존재한다. 34주된 태아를 낙태수술한 산부인과, 불법증축과 소방시설미비, 그리고 입원환자를 의료인력없이 신체를 결박하여 화재로 인해 159명의 사상자를 냈던 밀양세종병원의 경우도 이러한 불법개설의료기관의 경우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전국적으로 적발된 사무장병원만 수백 곳에 이르며, 그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도 수조 원에 달한다.
이러한 불법개설기관이 진정으로 위험한 이유는 재정 누수 때문만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시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들은 환자 수를 늘리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권하고, 과잉진료를 통해 의료비를 부풀리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이에따라 입원율과 항생제처방율 또한 비정상적으로 높게된다. 그 결과 의료윤리가 무너진 공간에서 진료의 질은 담보되기 어렵고, 환자는 의학적 판단이 아닌 수익성에 따라 처방되는 의료서비스에 노출된다.
특히 치과·한방·요양병원 등 일부 진료 영역에서는 환자들이 해당 기관의 운영주체가 누구인지, 의료인의 면허 여부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의료인의 명패와 진료복 뒤에 숨겨진 불법의 실체는 환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과잉진료, 위임진료, 잘못된 시술, 심지어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번 협약은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지역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전국최초로 대구시 의약단체들이 공동선언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선언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대구는 명실상부한 메디시티이며 덴탈시티이다. 이것은 의약 단체들이 함께하여 자율적 윤리를 강화하고, 내부 자정 노력을 다짐하며, 공단과 함께 감시·예방 체계를 구축하는 길을 선도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이며, 이는 시민들에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협약에 참여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 누수 방지와 동시에 불법기관에 대한 정보 공유와 행정처분 연계가 더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환자의 제보를 적극적으로 받는 시스템 구축과 함께, 신고자 보호 및 보상 제도도 병행된다면 보다 실효성 있는 감시체계로 기능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의심이다. 병원 이용 시 비합리적인 진료비, 과도한 검사 유도, 진료 내용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경우라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의료기관 정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보건복지부 사이트를 통해 확인 가능하므로, 의심이 갈 경우 즉시 조회하고 신고하는 시민 감시가 필요하다.
불법개설기관은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다. 이는 건강권을 침해하는 범죄이자, 공공재인 건강보험제도의 기반을 흔드는 반사회적 행위다. 대구시에서 시작되는 이번 협약이 전국적인 불법 의료기관 척결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하며, 무엇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감시와 참여가 건강한 지역의료 환경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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