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근자 소설가
내가 인류라는 것이 자랑스러운가, 잘 모르겠다.
1950년을 기준으로 이후 진행 중인 현재를 '현생누대-신생대-제4기-인류세-크로퍼드절'이라 부르자고 제안한 화학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노벨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첸의 저 제안은 인류의 종말을 내포하는 말이었다. 또한 인류라는 종이 지구의 최강 포식자가 되어 이전 세대의 문을 닫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류세라는 저 말은 정직하지만 좀 가학적으로도 들렸다. 의아하면서 동시에 궁금했기에 다큐멘터리를 틀었다.
크뤼첸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2009년 국제층서위원회라는 기구가 결성됐다. 위원들은 세계 여러 곳의 지질층을 조사했고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에서 인류세를 입증할 대표 흔적을 찾았다. 방사능 물질인 플루토늄 등이었다.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한 방사능 낙진이 호수 아래에까지 도달해 고스란히 쌓인 것이다.
그 외 지역에서는 산업화의 잔해물인 구상 탄소 입자와 플라스틱과 건설 자재인 콘크리트와 닭 뼈 등이 발견되었다. 만약 인류세가 승인되면, 간빙기가 되어 인류가 농경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지난 1만1천700년 동안의 홀로세가 끝나게 될 전망이었다.
지질시대를 나누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란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통한 암석의 연대기 측정과 새로운 생물체의 등장과 멸종의 흔적인 화석을 분석하여 그리고 전 지구적인 지각 변동을 살펴보는 것이다. 귀납적인 해석이다.
현재적으로 이해하자면 이러하다. 소행성 충돌이건 판게아 진행으로 인해 대륙이 이동했건 간에 이전에 지구의 기온 변화 즉 온난화나 빙하의 확대로 생물의 대멸종이 일어났단다. 온난화라니. 바로 지금이 아닌가.
2024년 국제층서위원회 회의에서 66%의 반대로 인류세라는 명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단다. '시기상조'란다. 지금까지 대멸종은 100만~300만년에 걸쳐 아주 서서히 진행되었기에 지층에 그 흔적이 분명한데 비해 지금 인류세를 정한다면, 후대의 누군가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겨우 70여 년이니.
하지만 나는 '시기상조'라는 저 말이 다르게 해석된다. 지질시대라 이름 붙이기가 너무 빠르다고. 인간이 하는 활동으로 인해 지구가 뜨거워졌다는 것을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어제와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변하는 것을 거부하는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전 지구촌에서 보이는 기후 재앙의 빈도가 잦아지는 걸로 보아 인류세가 곧 정식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 예측된다.
그렇다고 내가 인류라는 게 부끄러운가? 정직하게 답하자면 그건 아닌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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