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왕자의 고려 망명, 800년 이어진 봉화와 베트남의 인연

  • 황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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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1 19:30  |  발행일 2025-08-11
지난 4월 주한 베트남 부대사 일행이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위치한 충효당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DB

지난 4월 주한 베트남 부대사 일행이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위치한 충효당을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DB

경북 봉화군과 베트남의 인연은 무려 8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작은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이자 최장기 집권 왕조인 '리(Ly)' 왕조의 몰락이었다. 제6대 황제 영종의 7남으로 태어난 이용상(李龍祥·1174~?)은 베트남에서 '리롱떵(Lý Long Tường)'으로 불렸으며, 훗날 봉화 화산 이씨의 시조가 된다.


1210년, 조카 혜종이 제8대 황제로 즉위한 뒤 외척이자 권신이었던 진수도(陳守度)가 국정을 장악하며 왕조의 운명은 급격히 기울었다. 진수도는 자신의 조카와 황실 공주를 결혼시킨 뒤 왕위를 찬탈했고, 1226년 혜종의 장례식에서 왕족들을 집단 도륙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씨 가문의 후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이용상은 숙청을 피해 가족과 부하들을 이끌고 남송과 대만, 금나라, 몽골 등을 거쳐 황해도 옹진군 화산포에 도착했다.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보트피플'로 기록된 그는 고려 조정의 환영 속에 정착했고, 고려 왕실로부터 '화산'이라는 성씨를 하사받았다. 그 후손들은 조선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이후 리 왕조 건국자 이공온의 20세손이자 이용상의 13세손인 이장발(1574~1592)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9세의 나이로 문경새재 전투에 참전해 장렬히 전사했다. 문경새재 전투는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 요충지 방어전으로, 격전 끝에 많은 조선군이 희생됐다. 그는 전사 후 공조참의 직위가 내려졌으며, 1750년경, 후손과 유림들이 그의 충절과 효심을 기리기 위해 봉화군 봉성면 창평리에 충효당(문화재자료 제466호)을 건립했다.


이장발은 베트남 왕자의 후손이자 조선의 젊은 무장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역사적 인연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이다. 그의 짧지만 굳센 생애는 봉화 화산 이씨 집성촌의 정체성을 형성했고, 후손과 지역 유림은 지금도 제향과 보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봉화가 단순한 농촌이 아니라, 양국 역사가 맞닿은 상징적 공간임을 보여준다.


현재 봉화군은 이장발과 화산 이씨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곳에서는 베트남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양국 교류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과거 망명 왕자의 발자취는 오늘날 문화·외교 자산으로 확장되며, 봉화를 새로운 국제 교류의 중심지로 부각시키고 있다.


봉화와 베트남의 인연은 단순한 국제 우호를 넘어 피와 역사가 얽힌 서사다. 13세기 폭정과 숙청을 피해 바다를 건넌 한 왕자의 여정은 21세기까지 이어져,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양국 간 교류를 잇는 다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충효당과 화산 이씨의 전통은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을 상징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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