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그날이 오면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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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15 06:00  |  발행일 2025-08-14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해마다 8월15일이 오면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떠오른다. 서가에서 낡은 책을 찾아 시를 다시 읽어본다. 읽을수록 그 진정성과 끓어오르는 격정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얼마나 그날이 그리웠을까!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저항시라면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자유'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자유'를 세계 제2의 저항시로 평가한다. 제1은 물론 '그날이 오면'이다. 엘뤼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저항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면서 이 시를 썼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노트 위에/ 내 책상 위에,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의 페이지 위에/ 흰 종이 위에/ 돌과 피,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부유의 허상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파괴된 내 방공호 위에/ 무너진 내 등대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소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하고,/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서 나는 태어났다/ 오, 자유여."


엘뤼아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년 뒤인 1952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심훈은 1930년에 쓴 '그날이 오면'을 발표하지도 못했고, 나라가 1945년 독립을 되찾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서른다섯 젊은 나이로 1936년 타계했다.


우리는 대체로 심훈보다 훨씬 오래 산다. 어떤 그날을 기다리는지도 불분명한 채 "더덩실 춤"을 추는 경우도 많다. 단심(丹心)을 잃은 물신주의자들을 꾸짖는 듯 '달성 하목정'의 배롱나무가 한창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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