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미영 새마을문고대구남구대명1동분회 감사
몇 해 전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의사는 기름진 음식과 육류를 줄이라고 권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채소 위주의 식단을 결심했다. 하지만 며칠도 못 가 삼겹살 냄새 앞에서 무너졌다. 작은 결심조차 이렇게 힘든데, 삶 전체를 건 선택은 얼마나 고독하고 고통스러울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것이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였다.
이 책 속 주인공 영혜 역시, 세상의 기준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다. 어느 날 돌연 "나는 더 이상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녀의 채식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도, 환경을 위한 실천도 아니었다. 그것은 폭력적인 세계와 단절하려는 몸부림이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으려는 절박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이를 이해하지 못했고, 따뜻해야 할 가정은 오히려 그녀를 옥죄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이 현실을 작가는 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을 통해 그린다. 그들은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각자의 욕망과 상처를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영혜의 선택은 그들의 세계에서 '이상함'이 되었고, 그녀는 점점 고립됐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주먹이나 욕설이 아닌, 시선과 규범, 말 없는 압박으로 스며드는 억압이었다. 그 압박은 그녀를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고, 영혜는 결국 채식과 침묵을 선택했다.
살아 있는 존재를 해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지만, 그 선택은 더 큰 폭력을 불러왔다. 끝내 그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식물이 되기를 바란다. 정상의 기준은 다수의 편의일 뿐이며, 그 안에는 배제와 폭력이 은밀히 숨어 있다. 많은 조사에서 한국 사회가 '다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영혜의 이야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다름' 때문에 고립되고, 시선 속에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해에 인색한 시선이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폭력일지 모른다. 그 폭력의 그림자를 마주하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내가 내린 선택은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사회와 타인의 기대 속에서 조율된 것인가. 영혜처럼 침묵으로 맞설 용기는 없지만,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의지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단순히 채식이나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과 자유, 그리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 불편함은 '다름'을 대하는 나의 시선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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