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미 작전명이유 대표
나이가 들수록 여성들의 말은 솔직해진다. 예전에는 빙 둘러 말하거나 참고 넘기던 이들이 이제는 하고 싶은 말을 주저없이 꺼내 놓는다. 이는 단순한 성격 변화가 아니라, 긴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얻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마침내 시작된 자기 선언이다.
"칠십이 넘어서도 내가 늦게까지 농사일하고 저녁밥 차리고, 주말에는 손자까지 봐줘야 하나?" 한 여성의 말처럼, 오랜 인내 끝에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때로는 가까운 이웃 사이에서도 갈등을 낳는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부, 혹은 마을 사람들이 노년의 문턱에서 서로에게 낯선 얼굴로 마주하는 순간도 생긴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단지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눌러왔던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자 하는, 정직하고도 당당한 외침이다. 남편으로부터, 자식으로부터, 그리고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돌봄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해방'의 움직임이다. 과거에는 같은 처지라는 연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각자가 각자의 해방일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대화법이고, 서로의 방식에 귀 기울일 준비다.
같은 세대의 남성들도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해방을 찾아 나선다. 달성공원 번개장터나 농산품 행사장에서 한켠에 모여 잡동사니를 구경하고 흥정을 벌이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은 작은 축제를 연상케 한다. 그들 나름의 해방 공간이자, 일상에서 벗어난 쉼터다. 시장의 변두리 같은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와 여유는 오랜 시간 가장으로서 짊어져 온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는 집 밖에서 오래도록 만들어온 또 하나의 '자리'다.
여성과 남성,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은 닮아 있다. 결국 노년 세대가 원하는 것은 '나만의 시간, 나만의 자리'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다양한 표현들이 서로를 무시하거나 대립하지 않도록, 함께 들어주는 태도다. 여성들의 직설 속에는 억눌린 세월에 대한 진심 어린 응답이 있고, 남성들의 장터 문화 속에도 또 다른 해방의 욕망이 담겨 있다.
다만 이 해방이 공동체 안에서 충돌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서로의 삶을 인정하고 다름을 포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오랜 침묵 끝에 꺼낸 말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찾아낸 자유가 서로를 거스르기보다는 보듬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한 발짝씩 마음을 여는 연습이 필요한 때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