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경제전문기자의 촉] 트럼프식 거래외교 재현…경제와 안보를 한 묶음으로

  • 고건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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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26 15:18  |  수정 2025-08-26 17:39  |  발행일 2025-08-26
관세·투자·조선 협력 띄우며 방산·주한미군기지까지 압박
北美대화 재개 의지 강조…한반도 평화협상 카드로 활용
고건 경제전문기자

고건 경제전문기자

미국 워싱턴 현지 시각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개시했다. 회담 전까지 한국 측에서는 우선 관세 안정화와 첨단 산업 협력을 가장 큰 성과 목표로 잡았다. 이미 7월에 타결된 합의에 따라 한국산 수입품에 15% 관세가 부과되기로 했지만 이행의 세부 조건이 남아 있어 추가 협의가 불가피했다.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관세가 언제까지 유예될 것인지, 배터리와 반도체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보장될지가 산업계의 초점이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유세 시절부터 반복해온 방위비 분담 압박과 통상 재협상 요구가 이번에도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예고 없는 돌발 발언이 회담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했다. 실제로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벌어지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라는 포스팅을 트루스 소셜에 올리면서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본격적인 회담이 시작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단도직입적으로 경제 산업 협력 의제를 꺼냈다. 그는 "오늘은 선박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며 한국의 조선 기술을 미국 내 조선소와 결합하고 싶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어 "한국은 미국산 군사장비의 큰 구매국"이라고 말해 방산 거래와 산업 협력이라는 어젠다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방식대로 안보와 경제를 한 묶음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번 회담에서 이 대통령의 마지막 일정이 한미 조선 산업 협력의 상징인 한화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 시찰과 미국 해양청이 발주한 국가안보 다목적선의 명명식 참석이라는 것까지 감안하면 조선 산업을 포함한 경제 협력이 이번 협상의 핵심 의제들 중 하나라는 부분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후로 회담의 전개는 경제와 안보 의제가 번갈아 등장하는 흐름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드론 전쟁은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실제로 그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드론 전쟁이라는 새로운 양상에 대비한 기술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고 국방부를 옛 2차 대전까지의 명칭인 전쟁부(Department of War)로 되돌리자는 발언까지 내놓았다.


한편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중점적으로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당신의 역할을 부탁드린다"고 직접 요청했고 "북한에 트럼프 타워가 세워지고 골프를 치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농담까지 던졌다. 이는 단순한 농담이라기보다는 한반도의 안정을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제 프로젝트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외교적 수사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맞춰 자신의 대북 경험을 강조하며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며 과거 첫 임기에서의 개인적 친분을 부각했다. 나아가 "사실 나보다 김정은과 더 좋은 관계를 가진 사람은 김여정뿐일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에서 자신이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플레이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2019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던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적절한 시점에 김정은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밝히며 향후 재회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김 위원장을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이라 불렀던 사실을 다시 꺼내며 비난과 친분을 동시에 활용하는 특유의 화법을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나는 다시 그를 만날 것이다. 나는 그를 다시 보기를 고대한다"고 덧붙였다. 회담은 관세와 투자라는 경제적 목적으로 시작하고 선박과 군사 협력이라는 세부 의제로 드러났지만 북한은 두 정상의 언급 속에서 다시금 핵심 변수로 자리잡았다. 한반도 평화와 북미 관계가 여전히 한미 양국 경제, 안보 협력의 배경이자 협상 카드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이어 주한미군 기지 문제를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기지가 있는 그 토지에 대한 리스를 없애고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며 오산 공군기지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이 발언은 주한미군 기지를 단순한 안보 자산이 아닌 경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입장에서는 핵심 안보 자산의 불확실성이 곧 압박으로 작용하고 미국 입장에서는 관세나 대미 투자에서 유리한 조건을 밀어붙일 수 있는 카드로 쓰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번 회담에서는 25일(현지시각) 오후 12시 43분부터 모두발언을 포함한 언론 공개 회담이 약 50분간 진행된 후 캐비닛룸 확대 회담과 업무오찬이 비공개로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아직 비공개 회담의 구체적 성과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관세 협상과 관련하여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의 세부적인 내용과 농축산물 개방 여부, 주한미군 배치의 유연성 확대와 분담금 증액 문제, 한미 조선과 원전 협력 강화와 함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여부 등이 논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전망은 크게 두 갈래다. 단기적으로는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확약이 미국 내 고용과 생산 기반 확대를 이끌어내고 이는 산업계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에 과도하게 종속되는 위험이 존재한다. 산업계는 미국 내 투자 확대가 국내 생태계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야 하고 동시에 언제든 정치적 요인으로 재부상할 수 있는 관세·통상 이슈에 대비해야 한다는 과제를 얻었다. 이번 회담을 통해서 산업계는 세 가지 최우선 과제를 떠안았다. 첫째, 조선,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산업 협력이 단순한 투자에 그치지 않고 기술 주도권 강화로 이어지도록 관리하는 것. 둘째, 관세 협상이 언제든 다시 정치화될 수 있음을 고려해 수출 시장 다변화 전략을 병행하는 것. 셋째,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 속에서 산업계가 장기적으로 어떤 구조적 리스크를 떠안을지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이번 회담은 출발점일 뿐이며 실제 성과와 부담은 향후 협상의 결과로 가늠될 예정이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미국주식 사관학교 공동대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고배당주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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