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찌오 리오또 교수가 "삼국유사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과 신화를 담은 보고(寶庫)"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한국학 대부' 마우리찌오 리오또(Maurizio Riotto) 교수. 그는 40년간 한국학을 연구해 오면서 한국 고전문학과 고대사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다. 특히 그의 2024년 한 해는 오직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국유사는 지난 4월 최종적으로 국제목록 등재에 실패했다.
최근 경북대에서 영남일보와 만난 리오또 교수는 "삼국유사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반드시 등재돼야 한다"며 자신의 등재 노력은 여기서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는 "세계가 이미 인정한 가치를 부정한 결정"이라며 "삼국유사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과 신화를 담은 보고(寶庫)"라고 강조했다. 그는 왜 이토록 삼국유사에 애정을 갖는 것일까.
리오또 교수의 삼국유사 번역에는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이 꼬박 걸렸다. 그는 삼국유사 판본 중 가장 완전하다고 알려진 1512년 중종임신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 작업에 이처럼 긴 시간이 걸린 것은 불교·샤머니즘 용어, 삼국의 관료제 용어 등 난해한 부분이 많은 데다 저자 일연스님이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옮길 때 생긴 오류까지 바로잡으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삼국유사는 유럽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중세 텍스트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자리 잡았다. 리오또 교수는 삼국유사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삼국유사는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여성·외국인·평민이 모두 주인공이 되며 신화와 역사, 불교와 무속, 유교적 가치까지 융합해내는 유일무이한 책이지요. 신라 향가를 전하는 유일한 문헌이자 단군신화를 기록한 첫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한국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와 연결된 초국가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리오또 교수는 한국 고전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전파해 온 학자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의 리오또 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동양문명에 매혹돼 한국 청동기 시대를 주제로 로마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국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19년까지 나폴리 동양학대학에서 한국학 교수로 한국어와 한국 문학·문화를 가르쳤다. 1724년에 설립돼 1732년에 교황의 승인을 받은 이 대학은 동양 언어와 문화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그는 이탈리아와 한국을 오가며 서울대·서강대·고려대·성균관대·이화여대 등에서 방문 교수로도 활동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동북아시아역사재단·한국문학번역원·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초청학자로도 활동했다. 2019년 이후부터는 한국에 들어와 안양대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자로 활동하다 지난 2월 퇴임했다.
리오또 교수가 쓴 한국과 관련된 논문과 저서는 이탈리아에서 교과서나 다름없다.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작업을 한 학자는 그가 유일무이하다. 한국학을 연구한 40여년 동안 리오또 교수는 35권의 책과 약 185개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번역된 '제왕운기'를 비롯해 '법화영험전' '해동고승전' '왕오천축국전' '수이전' '구운몽' 등 역사서·설화집·여행기·불교서·신화·고전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망라돼 있다. 이뿐 아니다. 이문열의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해 겨울' '시인', 김승옥의 '무진기행', 조정래의 '유형의 땅',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등 빛나는 한국 현대문학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직접 번역했다.
특히 한국 고전 텍스트인 '춘향전' '인현왕후전' '이춘풍전' '전우치전' '최고운전'을 번역해 이탈리아어에서 18세기 한글 텍스트를 연구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그의 큰 업적이다. 남북한 역사를 아우른 '한국사'도 직접 집필했다. 그가 쓴 한국어 입문이나 '한국문학통사' 등은 이탈리아 곳곳에서 교재로 쓰인다. 리오또 교수는 한국문학과 한국사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다.
앞으로 한국에 거주하며 삼국유사를 비롯한 한국 고전을 세계 문학과 비교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삼국유사 속 이야기 구조는 페르시아·메소포타미아·그리스 민속과도 맞닿아 있다"며 "한국문화가 본래 초국가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릴 새로운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고전과 한국학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세계와 연결해 온 리오또 교수의 학문적 여정이 이제 신화와 역사가 얽혀 있는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또 하나의 신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마우리찌오 리오또 교수가 2024년 9월 경북대에서 열린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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