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우리찌오 리오또씨 "삼국유사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과 신화를 담은 보고(寶庫)"라며 앞으로 삼국유사를 비롯한 한국 고전을 세계 문학과 비교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마우리찌오 리오또씨가 2024년 9월 경북대학교에서 열린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한국학 대부' 마우리찌오 리오또(Maurizio Riotto) 교수. 그는 40년간 한국학을 연구하며 한국 고전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해 한국 고전문학과 고대사를 이탈리아와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다.
5년에 걸친 번역 작업을 거쳐 삼국유사를 이탈리아어로 출판한 바 있는 그의 2024년 한 해는 오직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삼국유사는 이번 등재 목록으로 선정되지 못했지만, 그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가 이미 인정한 가치를 부정한 결정"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한 그는 "삼국유사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과 신화를 담은 보고(寶庫)"라고 강조한다.
리오또씨는 한국 고전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전파해온 학자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의 리오또 교수는 젊은 시절부터 동양 문명에 매혹돼, 한국 청동기 시대를 주제로 로마 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으로 건너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국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2019년까지 나폴리 동양학대학교에서 한국학 교수로 한국어와 한국문학 한국문화를 가르쳤다. 1724년에 설립되어 1732년에 교황의 승인을 받은 이 대학은 동양 언어와 문화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다.
그는 이탈리아와 한국을 오가며 서울대, 서강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방문 교수로도 활동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동북아시아역사재단, 한국문학번역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초청학자로도 활동했다. 2019년 이후부터는 한국에 들어와 안양대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자로 활동하다 지난 2월 퇴임했다.
리오또 교수가 쓴 한국과 관련된 논문과 저서는 이탈리아에서는 교과서나 다름없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작업을 한 학자는 그가 유일무이하다.
한국학을 연구한 40여년 동안 리오또 교수는 35권의 책과 약 185개의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번역된 '제왕운기'와 '법화영험전'을 포함하여 '해동고승전',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수이전'과 같은 고대 작품들, 한국의 신화와 전설에 관한 책들, '구운몽' 등 많은 작품이 포함된다.
이문열의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해 겨울' '시인' 김승옥의 '무진기행' 조정래의 '유형의 땅' 이균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 등 빛나는 한국 현대문학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직접 번역하였으며, 한국 고전 텍스트인 '춘향전' '인현왕후전' '이춘풍전' '전우치전' '최고운전'을 번역해 이탈리아어에서 18세기 한글 텍스트를 연구할 수 있게 만든 것은 그의 큰 업적이다.
남북한 역사를 아우른 '한국사'도 직접 집필했다. 그가 쓴 한국어 입문이나 '한국문학통사' 등은 이탈리아 곳곳에서 교재로 쓰인다. 리오또씨는 한국문학과 한국사의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로 2011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포장도 받았다.
그가 특별히 애정을 갖는 '삼국유사' 번역에는 5년의 시간이 꼬박 걸렸다. 삼국유사 판본 중 가장 완전하다고 알려진 1512년 중종임신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 작업에 이처럼 긴 시간이 걸린 것은 불교·샤머니즘 용어, 삼국의 관료제 용어 등 난해한 부분이 많은데다 저자 일연스님이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옮길 때 생겼던 오류까지 바로 잡으면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삼국유사는 유럽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중세 텍스트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자리 잡았다. 리오또 교수는 삼국유사의 가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삼국유사는 한국만의 것이 아닙니다. 여성, 외국인, 평민이 모두 주인공이 되며, 신화와 역사, 불교와 무속, 유교적 가치까지 융합해내는 유일무이한 책이지요. 신라 향가를 전하는 유일한 문헌이자 단군신화를 기록한 첫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한국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와 연결된 초국가적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리오또 교수는 지난 한 해 삼국유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사업단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아쉽게도 이번 등재 신청 대상에서는 탈락했지만 삼국유사는 반드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으로 그는 한국에 거주하며 삼국유사를 비롯한 한국 고전을 세계 문학과 비교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삼국유사 속 이야기 구조는 페르시아·메소포타미아·그리스 민속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 문화가 본래 초국가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릴 새로운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한국고전과 한국학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세계와 연결해온 리오또 교수의 학문적 여정은 이제 신화와 역사가 얽혀 있는 삼국유사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또 하나의 신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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