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만진 소설가
1813년 10월10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태어났다. '라 트라비아타'로 세계 음악사에 이름을 새긴 베르디의 부모는 작은 가게 주인이었다. 하루는 떠돌이 악사가 그 가게에 들렀다가 8세 베르디의 재능을 발견해 음악의 길로 안내했다. 베르디는 마을 교회의 늙은 오르가니스트를 첫 스승으로 모셨다. 늙은 스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베르디는 10살부터 마을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소년 베르디가 연주했던 그 오르간은 현재 이탈리아의 국보로 지정돼 있다.
베르디는 뒤마의 소설 '춘희'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재창작하여 1853년 초연했다. 그러나 대실패로 끝났다. 기품 있는 가문 청년 알프레도와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끝내고 폐병에 걸려 가련하게 죽어가는 비천한 신분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도나텔리라에게 맡긴 점이 치명적 잘못이었다.
알프레도 역의 남자 테너 가수도 감기 탓에 실력 발휘를 못했다. 베르디는 1854년 작품의 음악을 일부 수정하고, 극중 연대도 1850년대에서 1700년대로 바꾼 뒤 다른 배우들을 기용해 무대에 다시 올렸다.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 '라 트라비아타'는 음악사 불후의 명작이자 베르디의 대표작으로 각인되었다. 비올레타는 소설에 늘 동백꽃을 지니고 있는 여인으로 나온다. 그래서 한자어로 춘희(椿姬)가 되었다. 춘(椿)이 '동백나무 춘'이다.
무엇인가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을 줄 아는 비올레타,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사랑의 화신으로 여겨질 만하다. 그런데도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의 아버지는 비올레타에게 아들과 헤어져 달라고 부탁한다.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정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비올레타는 거짓 핑계를 대고 사랑하는 연인 곁을 떠나간다. 알프레도는 배신감과 실망에 사로잡혀 고향 프로방스로 돌아간다.
비올레타는 동백꽃을 분신으로 삼았지만 알프레도는 고향 프로방스를 자신의 그 무엇으로 부등켜 안지 못한다. 소설에 나타난 언행이 말해주듯 알프레도는 이래저래 비올레타보다 한 수 아래 수준이었다. 프로방스는 세잔의 고향이다. 세잔은 고향 프로방스의 생트빅투아르산을 90점 이상 화폭에 담았다. 그만큼 그는 고향을 사랑했다. 덕분에 프로방스는 세잔이 타계하고 1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세잔의 고향'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비올레타는 동백꽃으로, 세잔은 생트빅투아르산으로 기억되고 있다.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로 기억되고, 소년 베르디의 오르간은 조국의 국보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인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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