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인생 내리막길에서

  •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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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13 06:00  |  발행일 2025-10-12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인생 내리막길에서 '그 꽃'을 음미한다. 시를 읽은 맛이란 최소한의 언어를 사용하여 의미를 극대화한 표현 기교를 빼놓을 수 없다. 고은 시인의 시다. 2연 3행으로 된 짧은 노래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평이한 말로 씌어 있으나 간결한 구성이 경제성을 확보한 시다. 시 속에 담은 내용이 인간 삶의 깊은 진리다. 산행길과 같은 인생살이, 혈기왕성한 젊을 때 발견하지 못한 '꽃(自我)'을 나이 들어 지금에 찾았다고 한다. 인생 후반을 사는 나에게 용기를 준다. 남은 삶을 편안하게 살라 하는 듯하다.


직장에서 정년퇴직하니 삶에 여유가 생긴다. 가정의 경제권은 아내에게 넘어갔고 아이들에 대한 걱정도 모두 알아서 한다는 말에 토를 달 수가 없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아무런 문제 없이 잘도 굴러간다. 아내가 하는 일이 미덥지 못해 거듭 당부하다 퉁바리를 먹고, 집 아이들이 하는 일에도 간섭하다 미움만 산다.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 달래는 방법으로 '그 꽃'을 자주 흥얼거린다.


취미로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직장을 다닐 때보다 시간이 많아 자주 구장에 나갈 수 있어 좋다. 전보다 재미도 있다. 과거에 비해 경기 기능이 향상되었거나 요령이 는 것은 아니다. 변한 것은 경기할 때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운동을 같이 해온 동호인들이라 개성까지 잘 안다. 전에는 클럽 안에 같은 팀으로 경기하기 싫은 회원이 있었는데 요즈음은 없다. 경기에서 이겨야만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져도 별로 속상하지 않다. 씩 웃고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면 그만이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은 나에게 '그 꽃'이 던지는 의미가 크다. 비록 시는 짧지만, 흡인력은 대단하다. 삶에 지쳐 쉬고 싶은 마음에 위로를 주고 심적·영적 허기를 채워주고 있다. 다소 아전인수지만, '그 꽃'은 느슨한 문장에서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지나친 기교가 없어 좋다. 시 속에 담고 있는 진리가 어떤 선을 긋고 한계를 설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 짧은 서정시의 진수를 보여준다.


나이를 많이 먹는다는 것은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이다. 인생 내리막길에서 하는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욕심이 생길 때마다 암송하며 마음을 달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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