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면서 경북 포항 영일만항을 거점항만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새로운 해상 실크로드가 열리고, 각국이 북극항로 선점 경쟁에 뛰어드는 가운데 영일만항의 지정학적 이점과 산업적 잠재력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얕은 수심, 낮은 물동량, 미흡한 네트워크 등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기회는 곧 위기로 바뀔 수 있다. 영일만항이 진정한 북극항로의 관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를 위해 지난 9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북극항로 전략 정책세미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미나에서는 북극항로와 영일만항에 대한 논의가 중점적으로 이뤄졌으며, 특히 패널토론 자리에 나선 이희용 영남대학교 무역학부 교수는 포항 영일만항이 북극항로 거점항만으로 성장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먼저 영일만항의 가장 큰 약점은 11m에 불과한 얕은 수심이다. 이는 1만 TEU급 대형 컨테이너선의 접안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소형 선박을 여러 차례 운항하는 방식을 강제시킴으로써 유류비와 인건비 부담을 높여 대형 선사들의 유치를 어렵게 한다. 물동량 확보에서도 어려움이 반복되고 있다. 개항 초기부터 특정 화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영일만항은 과거 러시아 자동차 부품, 현재는 목재펠릿이 전체 물동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외부 충격에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 배후단지 내 자유무역지대 미지정, 미흡한 항만 네트워크, 낮은 정보화 수준은 물류 편의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법제화와 인력 양성 또한 시급하다. 국회에서 북극항로 특별법이 잇따라 발의되는 만큼, 영일만항을 국가 차원의 전략 거점으로 지정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해양 물류, 에너지, 조선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다만 단점들을 극복하면 영일만항은 북극항로에 근접한 지정학적 위치와 철강과 2차전지 산업 등 강력한 배후산업이라는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키울 수 있다. 즉 부산항 중심의 대형 컨테이너 항만과는 차별화된 에너지·벌크화물 중심의 북극항로 특화 항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사회와 경상북도는 이미 대응에 나섰다. 도는 '북극항로 추진팀'을 신설했고, 영일만항 확장과 특화 전략 마련을 위해 대규모 용역을 진행 중이다. 내년 말까지 진행되는 이 용역에서는 32선석 운영 방안, 유치 가능한 물류 품목, 특화 산업 결합 전략 등이 심층적으로 검토된다. 여기에 더해 수산업, 에너지, 광물 자원 등 북극항로를 통한 신규 산업 기회를 어떻게 영일만항에 연계할지도 중요한 과제로 다뤄질 계획이다.
궁극적으로 영일만항은 단순한 지역 항만이 아니다. 포항이 가진 과학기술 인프라, 산업 기반, 지정학적 이점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이 북극항로 시대에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전상희 포항시 항만정책팀장은 "영일만항은 국가가 전략적으로 지은 항만이므로 본래의 목적을 되살려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북극항로라는 시대적 변화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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