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최초의 한글 향토지 달구대관…해방 이후 대구를 기록하다

  •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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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12 16:46  |  수정 2025-10-13 09:24  |  발행일 2025-10-13
달구대관 1권

달구대관 1권

달구대관 2권

달구대관 2권

달구대관 제1권을 볼 수 있는  QR코드
달구대관 제1권을 볼 수 있는  QR코드

달구대관(達句大觀)은 영남일보사가 1957년 5월 발간한 2권 분량의 향토지다. 기존의 향토지가 한문이나 일본어로 편찬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던 것과 달리, 해방 이후의 대구와 경북의 모습을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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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대관이라는 제목은 대구의 옛 지명과 종합 기록의 성격을 결합한 명칭이다. '달구(達句)'는 삼국시대부터 대구를 가리키던 지명인 '달구벌(達句伐)'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역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관(大觀)'은 '큰 조망, 종합적 관찰, 총람'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근대 이후 향토지를 편찬할 때 자주 사용된 용어다.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집대성한 기록물의 성격을 지닌다는 뜻이다. '달구대관'은 곧 '대구를 총체적으로 살펴본 종합 기록'이라는 뜻을 담는다.


◆지방 문화의 진흥과 기록 보존


책은 1950년대 전후, 한국전쟁 직후 대구가 임시 수도 역할을 맡고 피난민의 유입과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기에 간행됐다. '달구대관'은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전후 도시로서의 현실과 미래상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향토지로 보인다.


책의 범위는 고대에서 1950년대까지에 이르며, 정치·경제·사회·문화·산업을 망라해 집대성했다. 제1권은 고대(1장)와 조선(李朝) 시대(2~4장)로 구성돼 있다. 제2권에서는 대구와 경상북도의 주요 연혁과 대구 3·1운동사, 경북 항일투쟁사, 교육·의료·산업계 인물 기록 등을 상세히 담았다.


문교부 최규남 장관이 온고지신(溫故知新) 휘호와 함께 달구대관의 발간을 축하했다.

문교부 최규남 장관이 '온고지신(溫故知新)' 휘호와 함께 달구대관의 발간을 축하했다.

달구대관은 중앙 관료·의원과 지역인사의 축사로 시작한다. 이순희(영남일보 사장), 오재경(공보실장), 허흡(대구시장), 이기붕(민의원의장), 조병옥(민의원 의원) 등 당대 주요 인사들의 서문이 수록돼 있다.


영남일보 이순희 사장은 머리말에서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의 이상과 민족의 지표 또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는 법"이라며 역사의 기록에 대해 강조했다. 또 "영남일보는 지방 문화의 진흥과 기록 보존을 위해 이 책을 냈다"면서 "고향의 과거를 되새기고, 새로운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력 정치인과 정부 요직의 인사들도 영남일보의 달구대관 발간을 축하했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기붕 민의원 의장은 "달구대관의 내용은 지방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우리나라 문화사에서도 간과할 수 없다"며 "앞으로도 문화 생활의 생성과 발달의 기록을 남겨줄 것이라 믿는다"며 서문을 장식했다.


문교부 최규남 장관은 '온고지신(溫故知新)' 휘호와 함께 달구대관의 발간을 축하했다. 이밖에 경북도의회 정재원 의장, 김용식 대구고등법원장, 서동진·이우줄 의원 등이 축하인사를 전했다.


또 허흡 당시 대구시장은 "아득한 대구시의 빛나는 전통과 찬란한 자태를 드러낸 책자"라고 평가하는 서문을 썼다.


이어 허흡 시장은 "시민의 복리와 건설을 위해 노력했으나 소개할 매체가 없었다"면서 "이 책을 발간하는 것이 영남일보만의 기쁨은 아닐 것"이라며 "이 책의 간행을 계획하고 애써준 영남일보에 경의를 표한다"고 거듭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달구대관에 실린 1957년 당시 대구시 지도.

달구대관에 실린 1957년 당시 대구시 지도.

◆정치·경제·사회·문화·산업 망라


1권은 고대부터의 역사와 향교·사찰 등 장소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달구대관에 의하면 대구는 삼한시대부터 눈길을 받았다. 대구는 12개 소국으로 이뤄진 진한(辰韓)의 중요한 거점으로 당시 문화와 생활을 잘 보여준다고 전해진다. 또 대구는 통일신라 '달벌대전(達伐大戰)'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으로,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통일신라 말기부터 정치사의 중심 무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상도 감영(監營)이 설치되면서 대구는 행정·군사의 중심지였다"며 "문헌에는 '대구부'로 기록돼있고 이후로도 도호부로 위상이 유지됐다"고 적혀있다. 대구읍성이라고도 불리는 '대구부성'에 대해서는 "사람의 힘에만 의지하지 않고 지세(地勢)를 살피고 북쪽으로는 도적을 막을 수 있도록 방비했다"고 언급돼 있다. 대구부성이 세워진 뒤 반세기만에 대구의 면모는 새로워졌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서문시장과 약령시에 대한 이야기는 대구의 상업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약령시는 효종 시대 공납 제도를 배경으로, 대구에 형성된 약재 집산지다. 즉, 국가적 공납 체제 속에서 탄생한 시장인 것이다. 반면 서문시장은 민간 교환 경제에서 출발한 시장이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 항일 운동, 해방 후 지역사 중요 사료


2권에는 대구의 3·1운동사와 경북항일투쟁사가 상세히 정리돼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항일운동 관련 서술은 해방 이후 지역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 시위의 날짜·장소·참가자·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대구 3·1운동을 복원하는 핵심 1차 사료가 된다는 역사적·사료적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연표적 기록이 아니라 당시 시민들의 참여, 학생운동의 전개, 경찰과의 충돌 양상 등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전하고 있어 해방 직후 편찬된 자료답게 '민중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게다가 근대적 교육과 종교가 항일운동의 조직적 기반으로 작동했음도 보여준다. 이는 대구가 단순한 상업도시를 넘어 민족 자주와 독립을 향한 시민적 결집의 도시였음을 증명한다.


또 경북항일투쟁사 항목에는 경북지역의 항일독립운동 연혁을 연표로 정리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기부터 1936년까지 경북에서 일어난 주요 항일사건을 인물·사건명·지역별로 나열했다.


△1905년~1910년대 김천 일대의 무장 투쟁, 영양·청송·안동에서의 의병 봉기 △1910년대 후반~1920년대, 1919년 3·1운동과 그 후속 운동의 경북 전역 확산 △1930년대 신간회 활동, 소작쟁의, 농민·노동운동, 교육·문화운동 등으로 항일운동의 맥락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구성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달구대관에 소개된 조병옥, 서동진 등 민의원 의원들. 달구대관은 인물명감의 기능도 했다.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는 물론 2작사령관, 지법·고법·지검·고검·경찰서장 등 고위공무원과 지역 대학·병원장의 이력도 소개했다.

달구대관에 소개된 조병옥, 서동진 등 민의원 의원들. 달구대관은 인물명감의 기능도 했다.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는 물론 2작사령관, 지법·고법·지검·고검·경찰서장 등 고위공무원과 지역 대학·병원장의 이력도 소개했다.

◆지역 주요 인사의 면면 기록한 인물명감


달구대관은 인물명감의 기능도 했다. 대구시장, 경북도지사는 물론 2작사령관, 지법·고법·지검·고검·경찰서장 등 고위공무원과 지역 대학·병원장의 이력도 소개했다.


특히 방직·모직회사를 집중 조명했다. 이는 해방 이후 대구가 섬유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과 전후 경제 재건을 이끈 지역 산업의 주역과 현장을 증언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제일모직과 이병철 회장 소개. 당시 제일모직의 생산현황을 세세하게 알리고 있으며 이 회장에 대해서

제일모직과 이병철 회장 소개. 당시 제일모직의 생산현황을 세세하게 알리고 있으며 이 회장에 대해서 "눈빛은 언제든지 결의를 보이는 듯 하다"고 묘사했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소개도 있다. 이 회장은 제일모직주식회사 사장으로 모직회사의 경영자로서 달구대관에 등장한다. 달구대관에는 당시 제일모직의 생산현황을 세세하게 알리고 있으며, 특히 "일본산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며 제일모직의 생산품에 품질에 대한 평가도 내놓았다.


또 이 회장에 대해서 "눈빛은 언제든지 결의를 보이는 듯 하다"고 묘사했다. 취미로는 '콜푸(골프)'라고 쓰여있는데, 당시 흔히 않던 취미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또한 인물편에서는 조병옥, 서동진 등 민의원 의원뿐 아니라 당시 지역 경제 발전을 이끌던 기업가와 교육자, 의료인들이 다수 소개돼 있다.


1949년 건전가요로 지정된 능금노래 1949년 농림부가 물산장려를 위해 보급한 건전가요 능금노래. 대구의 특산물이었던 사과(능금)를 주제로 만들어진 노래다.

1949년 건전가요로 지정된 '능금노래' 1949년 농림부가 물산장려를 위해 보급한 건전가요 '능금노래'. 대구의 특산물이었던 사과(능금)를 주제로 만들어진 노래다.

대구시민의 노래 원문으로 실려


문화적 측면에서도 눈길을 끄는 내용이 많다. 1955년 시민 공모를 통해 제정된 '대구시민의 노래', 1949년 건전가요로 지정된 '능금노래'가 원문으로 실려 있어, 당시 대구 시민들의 정서와 지역 정체성을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1955년 공모·당선된 대구시민의 노래 1952년 영남일보의 지방자치제도 실시 기념 가사 공모로 탄생했다. 시인 백기만의 노랫말이 뽑혔고, 영남고 음악교사 유재덕의 곡이 만들어지면서 1955년부터 공식화됐다.

1955년 공모·당선된 '대구시민의 노래' 1952년 영남일보의 지방자치제도 실시 기념 가사 공모로 탄생했다. 시인 백기만의 노랫말이 뽑혔고, 영남고 음악교사 유재덕의 곡이 만들어지면서 1955년부터 공식화됐다.

시가(市歌)인 '대구시민의 노래'는 1952년 영남일보의 지방자치제도 실시 기념 가사 공모로 탄생했다. 시인 백기만의 노랫말이 뽑혔고, 영남고 음악교사 유재덕의 곡이 만들어지면서 1955년부터 공식화됐다.


1949년 농림부가 물산장려를 위해 보급한 건전가요 '능금노래'도 실려있다. 대구의 특산물이었던 사과(능금)를 주제로 만들어진 노래다. 가사, 악보와 함께 "능금나라 경북 품질은 세계제일"이라는 자부심도 새겨 놓았다.


◆지역사 연구 중요 자료로 활용


대구시는 자료의 공개와 더불어 자료를 활용한 전시·교육·연구안 발굴을 통해 시민의 향토사 접근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달구대관의 일반 공개는 해방기 이후 대구의 정치·사회적 변동과 지역 정체성을 한글 자료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 연구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구시는 향후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더불어 관련 자료의 학술적 검토·주석 작업 등을 통해 달구대관의 활용폭을 넓혀갈 방침이다.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 관광국장은 "달구대관은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전후 도시로서의 현실과 미래상을 종합적으로 담아낸 향토지"라며 "달구대관의 디지털 공개가 지역사 연구와 교육, 역사 보존 활동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달구대관은 현재 대구시 시사자료실 외에도 대구근대역사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각각 1세트씩 소장돼 있다.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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